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9.06.10 19:31 수정 : 2010.01.07 17:23

[매거진 esc] 조진국의 모어 댄 워즈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피운 적도 없다. 하지만 가끔은 오래 피우다 끊었던 것처럼 담배가 못 견디게 그립다. 간결한 피아노를 이끌며 시작되는 란의 애상적인 보컬이 돋보이는 ‘담배 피는 여자’를 듣고 있으면 한 여자가 피어오른다.

담배 피는 여자 욕하지 말아요 / 사랑의 상처가 많은 여자니까요 / 그렇게라도 안 하면 가슴이 너무 아파서 / 눈물만 흘리니까, 그런 여자이니까 (2008, 란, 담배 피는 여자)

가사에서처럼 사랑의 상처가 많아서 그렇다고 말해주는 대신, 그녀는 그냥 말없이 열심히 담배만 피웠다. 세상의 모든 담배 피우는 여자 중에서 그 여자만이 내겐 유일하게 담배 피우는 여자였다. 그전에도 담배 피우는 여자를 만난 적은 있다. 하지만 대개 담배를 피웠다기보다는 담배를 ‘시작했다’거나 담배에 ‘손을 댔다’고 했다. 담배를 끊기 위해 고민중이었고, 담배를 끼우고 있는 자신의 손을 미워했다. 이상하게 안쓰러웠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담배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좀더 일찍 죽어도 좋으니 담배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의 몸을 내어가면서까지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그게 비록 나쁜 쪽을 향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마음이 엄숙해 보였다. 담배를 끊어보지 않겠느냐는 말은 그만두었다. 대신 면세점에 갈 일이 생기면 선물로 막대사탕처럼 긴 담배 한 보루를 안겨줬고, 추운 겨울에도 난방이 잘되지 않는 흡연실에 앉아 기꺼이 담배 연기를 맡아줬으며, 터미널 출입구 구석에 마련된 재떨이 앞에서 코트를 양팔로 벌려주었다.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바람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담배가 꺼지지 않는 최소의 공간을 구축하던 그녀의 모습은 사진에서만 봤던 몽골의 유목민이나 전장에서 아기를 보호하려고 온몸으로 막아내던 모성의 비장함과 닮아 있었다.

그녀와의 키스도 좋았다. 코로만 맡던 냄새와 달리 물에 젖은 담배의 맛은 달랐다. 한마디로 묘했다. 한번은 원두 가루를 거름종이에 받치지 않고 뜨거운 물에 부어 그대로 마신 적이 있는데, 그런 느낌이었다. 걸러내지 않은, 씻어내지 않은, 어떤 원액을 그대로 들이마셔 순간 생경했지만, 기어코 익숙해지고 싶은 그런 맛이었다.

얼마 전 친구한테 그녀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어떤 남자의 ‘담배 피지 않는 여자’가 되어 잘살고 있더라고 했다. 축하해줘야 할 것 같으면서 배신감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절실함을 끌어안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잘못한 건가. 그녀는 그동안 자신의 흡연을 뜯어말릴 만한 강한 사람을 찾고 있었던 걸까.

결국 사랑을 정하는 것은 받는 사람의 몫이다.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주는 것을 무관심이라 느낄 수도 있고, 계속되는 강요를 끊임없는 애정으로 풀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는 사람이 더 어려운 것이 사랑이다.

조진국 작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모어 댄 워즈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