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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국의 모어 댄 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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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조진국의 모어 댄 워즈
오래전에 채팅 사이트에 빠져 산 적이 있다. 딱히 연애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 같은 인간을 좋아해줄 사람도 있을까 확인하고 싶었다. 그만큼 초라한 시절이었다. 그녀는 어떤 탤런트를 닮았다, 인기가 아주 많다 같은 거창한 예고편을 풀어놓지 않았다. ‘전 그냥 평범해요. 눈에 잘 안 띄어요’라고 수줍게 자판을 두드렸다. 약속 장소는 소공동 롯데백화점 앞으로 정했다. 도착해서 기다리는데 한 여자가 눈에 띄었다. 가시철조망으로 둘러쳐진 것처럼 다가갈 수 없는 예쁜 여자를 보니 슬퍼졌다. 저런 여자는 나 같은 놈은 상대도 안 하겠지, 고개를 숙이고 평범한 여자가 어디쯤 왔는지 휴대폰을 눌렀다. 그런데 그 예쁜 여자가 받았다. 아까부터 보고 있었어요,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나에게 왔다. 다음날에도 그녀를 만났다. 명동성당에 가고 싶다고 했다. 본당 뒤편으로 마리아 상이 보였고, 소주잔처럼 작은 양초들이 촘촘하게 빛나고 있었다. 불을 붙이고 소원을 비는 자리라고 했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무언가를 빌었다. 이 여자가 내 여자가 되게 해주세요, 유일하게 간절한 소원이었다. 그 당시엔 아무것도 이루어지는 게 없었다. 그녀는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다. 너무 힘들 때 옆에 있어준 사람이라 떠날 수 없다고 했다. 차라리 나오지 말지 왜 나왔느냐는 말에, 좋았으니까요. 그러면서 그녀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입술도 주었다. 무너지는 가슴에 맞닿는 그녀의 가슴은 하늘에 떠 있는 달처럼 동그랗고, 따뜻했다. 우리 집에 갈래요? 애인 있는 여자라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더 안고 싶은 욕망이 앞섰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좋아하는 노래를 담았다면서, 시디를 내밀었다. 이별 선물이었다. 집에 와서 들어 보니 유일하게 가요가 한 곡 끼어 있었다. 뿅뿅거리는 디스코 리듬에 저절로 손이 하늘로 뻗어나가는 박진영의 ‘그녀는 예뻤다’였다. 그녀는 너무 예뻤어. 하늘에서 온 천사였어. 그녀를 난 사랑했어. 우린 행복했어. 그런 그녀 날 떠나고 나는 혼자 남겨졌고 그녈 잊어보겠다고 애썼지만
그녀는 너무 예뻤다. 그래서 더 슬펐다. (박진영, 1996, 그녀는 예뻤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몸은 신나는데 눈에선 바보처럼 눈물이 났다. ‘그녀는 너무 예뻤다. 그래서 더 슬펐다.’ 자꾸 그 부분에서 울컥했다. 그녀가 평범하게 생겼더라도 아파했을까. 단지 예쁜 여자를 눈앞에서 놓쳐버린 게 분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예쁜 여자는 남자를 슬프게 한다는 것이었다. 갖고 싶어 애태워서 슬프고, 안고 있어도 달아날까봐 슬프고, 떠난 뒤에도 남아 있어서 슬프다. 조진국 작가/<고마워요, 소울메이트>,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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