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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국의 모어 댄 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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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조진국의 모어 댄 워즈
나는 결혼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10년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갈비탕 대신 나왔던 호텔 스테이크의 육즙은 무용담처럼 남아 있지만, 특별히 기억나는 서약이나 주례사는 없었다. 양복도 불편했고,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과 간지럽게 인사하는 것도 성미에 맞지 않았다. 최악의 초대손님인 셈이다. 그녀도 나처럼 결혼식을 싫어한다고 했다. 이유도 같았다. ‘무엇보다 축가가 싫어요. 난 그렇게 순수한 편이 아니라서 그런 노래를 들으면 양심에 찔려서 결혼식 중간에 뛰쳐나올 것 같아요.’ 나 또한 그럴 거라고 했다. ‘남들이 열심히 하는 걸 보면 뒤에서 팔짱 끼고 앉아서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며 빈정대는 타입이거든요.’ 그녀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어중간하게 한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이 많다며 웃었다. 우리는 신나서 서로 싫어하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크리스마스이브, 대하드라마, 밀크초콜릿, 세상의 모든 자기계발서, 빌보드 차트 …. 공통적으로 싫어하는 게 많아질수록 그녀와 나는 더욱 가까워져 갔다. 만일, 우리가 결혼한다면 팀 버튼의 ‘유령신부’ 사운드트랙을 틀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더니, 그녀는 그러자고 했다. 그녀는 농담이었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신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 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2007, 이적, 다행이다) 이적의 노래를 들은 건 친구의 차 안에서였다. 죽도록 사랑하겠다, 그런 거창한 게 아니라서 좋았다. 그저 다행이다, 라는 말이면 충분했다. 그 말 안에 들어 있는 일상적인 감정과 행동이라면 오히려 안심이 됐다. 축가로 할 만한 노래를 발견했다며 그녀에게 먼저 알렸다. 그녀는 싫다고 했다. 이 노래가 싫은 게 아니라 더 좋은 노래가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가 결혼식을 싫어했던 건, 축가 때문이 아니라 더 나은 남자를 찾고 있기 때문이라는 건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친구는 그녀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다니더라는 말을 그제야 알려주었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녀를 떠올린다. 그런 여자와 헤어져서 정말 다행이라고,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그대를 떠나고 그대의 그 얼굴을 안 볼 수가 있어서/그대를 떠나고 그대가 없는 데서 숨을 쉴 수 있어서/그대를 떠나서 심심하면 혼자 웃을 수가 있어서/다행이다. 그대라는 악몽 같은 세상이 거기 있어줘서. 조진국 작가/<고마워요, 소울메이트>·<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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