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진국의 모어 댄 워즈
|
[매거진 esc] 조진국의 모어 댄 워즈
얼마 전 인터넷을 하다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당시 중고등학생이었던 386세대에겐 브룩 실즈, 소피 마르소, 피비 케이츠가 책받침 속 연인이었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이 좋아했던 스타의 이름이며 추억의 한 조각을 꺼내 적은 댓글들도 훈훈했다. 그 기사를 읽으며 나는 도시락을 들고 다니며 서서 먹던 점심 풍경도 아니고, 친구 집에서 몰래 보던 성인비디오도 아닌, 작고 늙은 내 아버지와 독일 여배우 나스타샤 킨스키를 함께 떠올렸다. 나에게 아버지는 항상 아버지였다. 아빠였던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입학식 때 사람들이 물으면 손자라고 할 만큼, 늦은 나이에 나를 보셨다. 나는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티브이에 나오는 ‘아빠’처럼 넥타이를 매고 출근한 적도 없었고, 시원한 스킨 냄새 대신 소주 냄새를 풍겼으며, 부모의 학력란에 국졸과 무졸 중 어디에 적을까 고민하게 만드는 그가 부끄러웠다. 형들이 모두 군대에 가 혼자 쓰게 된 내 방엔 나스타샤 킨스키가 붙어 있었다. 버스 종점의 담벼락에 붙어 있던 영화 <테스>의 포스터를 떼 온 것이었다. 집에 오면 그녀의 옆모습부터 봤다. 면사포에 싸인 그녀의 얼굴은 눈이 부시게 신비로웠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테이프로 붙여놓은 귀퉁이가 곧 떨어질 것 같았다. 다녀와서 다시 붙여야겠다며 등교를 서둘렀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달려와 방문을 여니 포스터는 투명테이프로 빙 둘러져 절대 떨어질 수 없게 돼 있었다. “엄마가 그랬어?” “아니 낮에 아버지가 네 방에 들어가던데”라고 엄마가 말해주었다. 공부는 하지 않고 여배우에게 정신을 놓고 있는 자식이 한심하기도 했을 텐데, 의자를 밟고 올라가 테이프를 꼼꼼히 둘렀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울컥했다. 아버지는 그런 분이었다. 그 옛날 아버지가 앉아 있던 의자에 / 이렇게 석고처럼 앉아있으니 / 즐거웠던 지난날에 모든 추억이 / 내 가슴 깊이 밀려들어요.(1985, 정수라, 아버지의 의자) 아버지는 그렇게 의자처럼 말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공부하라고 윽박지르지도 않았고, 커서 뭐가 되라고 특별히 강요한 적도 없었다. 내가 앉고 싶을 때 앉고, 떠나고 싶어서 떠나가도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켰다. 그러다 아버지는 낡은 의자처럼 초라하게 늙어갔다. 나에게 아버지는 항상 2등이었다. 학교에 다녀와도 엄마라는 말이 먼저 나왔고, 어버이날에도 엄마 얼굴이 먼저 생각났다. 그때는 아버지의 사랑이 2등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첫 번째 자리를 양보해주고,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는 아버지의 더 큰 사랑이 있었다는 걸 왜 몰랐을까. 아버지는 영원히 2등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렇기에 아버지는 더 애잔한 이름이다. 조진국 작가/<고마워요, 소울메이트>,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