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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20 19:03 수정 : 2009.07.09 19:42

〈미식예찬〉

[매거진 esc] 요리보다 요리책 | 마식예찬

한 남자가 있었다. <요미우리신문> 경찰기자로 일하고 있지만 영 적성에 맞지 않았다. 장인이 요리학원을 물려받으라고 하자 냉큼 직장을 그만뒀다. 장인의 서재에서 우연히 들춰본 프랑스 요리와 미식 책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무작정 이들 저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미국행 비행기를 탄다. 그들과의 만남에서 프랑스 요리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선 일단 최고급 프랑스 음식 맛을 보고 그 맛을 자신의 혀에 각인시켜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바로 프랑스로 날아가 11주 동안 전국을 돌면서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세개를 받은 레스토랑 10곳과 별 두개 레스토랑 65곳 등 전부 100곳의 레스토랑을 돈다. 1960년대 고국인 일본으로 돌아와서 프랑스 현지 요리사 등을 동원해 최고의 교수진을 꾸린다. 재료값을 아끼지 않고 현지 식재료를 공수해 요리를 가르칠 뿐 아니라 재능이 있는 학생들은 손수 프랑스 유학까지 보냈다. 당시 프랑스 요리의 기본 소스 만드는 법도 모른 채 프랑스 요리를 만들어내던 일본 레스토랑계를 깜짝 놀라게 하며 일본 사회에 프랑스 요리 붐을 일으켰다. 프랑스 요리에 대한 열정은 가르치는 데만 그치지 않았다. 유럽에 흩어진 프랑스 요리 관련 고서를 모으고 연구하고 또 일본어로 펴내는 작업도 공을 들여 그가 펴낸 베스트셀러만 해도 <프랑스 요리의 이론과 실제> <유럽 맛의 여행> 등 여러 종에 달한다.

미국의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프랑스의 르 코르동 블뢰와 함께 세계 3대 요리학교로 불리는 쓰지 조리사 전문학교 창업주인 쓰지 시즈오(1933~93)의 이야기다. <미식예찬>(서커스 펴냄)은 쓰지 시즈오가 30년에 걸쳐 자신의 요리학원을 세계적인 요리학원으로 키워내는 과정을 흥미진진한 소설 형식으로 꾸민 책이다.

이 책은 그가 일생을 바쳐 프랑스 요리를 연구하고 프랑스 요리사를 키워낸 드라마틱한 과정을 그린 팩션이지만, 프랑스 요리의 진수를 맛보는 요리책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46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그림 한장 실려 있지 않지만, 샐러드부터 케이크까지 수백가지 프랑스 요리를 만드는 과정이 마치 눈앞에 시연되듯 화려하게 펼쳐진다. 화려한 도판이나 친절한 레시피는 없지만, 프랑스 요리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겐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교과서인 셈이다.

강김아리 기자의 요리보다 요리책
또 브리야 사바랭의 <미각의 생리학>, M.F.K. 피셔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의 예술>, 알렉상드르 뒤마의 <요리 대사전>, 새뮤얼 체임벌린의 <프랑스의 꽃다발> 등 프랑스 요리와 미식에 관한 유명 원서와 고서들이 많이 언급돼 ‘책 속의 책’을 읽는 재미도 뛰어나다. 폴 보퀴즈 등 현세기 최고 요리사들과의 교류를 실명으로 읽는 것 또한 읽는 이의 마음을 흥분시킨다.

하지만 이 책이 단순한 전기물 혹은 요리서적을 뛰어넘는 점은, 요리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훌륭한 요리사의 자세는 무엇인가, 나아가 열정이란 무엇인가, 생을 다 바쳐서 무엇을 이룬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등의 의문을 책 전체를 꿰뚫으며 질문하고 있다는 점이다. 철저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속도감 넘치는 문체, 이물감 없는 완벽한 번역 또한 이 책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다.

강김아리 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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