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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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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께 우익들의 마무리 집회. 이들의 목소리와 구호는 더욱 과격해졌다. “중국이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반대한다면 국교를 단절하면 된다.” “범죄인 지나인(중국인을 낮춰 부르는 말)과 조선인은 일본에서 쫓아내자.”
신사 밖 풍경과 달리, 안에서는 지난해 이맘때처럼 차분했다. 우익단체 회원들이 일장기를 앞세우고 줄을 맞춰 참배하러 가거나, 옛 일본군 복장을 한 노인들이 참배를 마치고 행진하는 모습은 이곳이 야스쿠니임을 실감케 했다. 야스쿠니신사를 둘러싼 새로운 풍경 하나 더. 일본 뉴스전문 사이트 <제이피 뉴스>는 아침 7시부터 현지 상황을 실시간으로 여덟 차례나 중계했다. <제이피 뉴스>는 참배객의 목소리를 날것으로 전했다.
“한국과 중국 사람들 입장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나로서도 오빠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반대를 너무 하니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80살 할머니)
“야스쿠니는 나 혼자 살아 돌아온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같이 싸운 전우를 위로해주는 장소다.”(87살 할아버지)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 우리와 비슷하게 반미를 주장하는 한국의 진보세력을 만나서 야스쿠니신사 문제에 대해 눈치 보지 않고 대토론을 해보고 싶다.”(신우익단체인 ‘잇스이카이’ 대표)
그러나 야스쿠니신사 안팎의 풍경만이 8·15를 맞는 일본이 아니다. 지난 9∼11일 사흘간 연속 방영된 3부작 다큐멘터리 <엔에이치케이(NHK) 스페셜-일본 해군 400시간 증언>(<한겨레> 15일치 2면)은 옛 일본 해군 핵심 참모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무모한 전쟁이 왜 벌어졌는지를 추적해 눈길을 모았다. 1부 ‘해군 있고 국가 없음’ 마지막에 프로그램 진행자는 이렇게 말했다. “각자가 자신의 일에 매몰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보지 못한 장교들의 자세가 ‘해군 있고 국가 없음’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에 주저함을 느낀다. 전 장교들이 고백한 전쟁에 이르는 프로세스는 지금 사회가 안고 있는 그 문제이고, 나 자신도 그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전후 일본을 지배해온 자민당 장기집권 체제가 끝나갈 조짐이다. 야스쿠니 대체시설 건립을 내세운 민주당이 진정으로 전쟁의 반성과 교훈을 살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도형 특파원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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