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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0.21 19:40 수정 : 2010.10.21 19:43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지난 13일 미국 워싱턴 디시(D.C.)의 미셸 리(41) 교육감이 물러났다.

교육현장 경험이 전혀 없는 30대 한국계 여성에게 워싱턴 교육감으로 지낸 지난 3년 반은 ‘전쟁’이었다. 그는 2007년 6월 취임하자마자 워싱턴을 무대로 자신의 신념을 현실화해 나갔다. 워싱턴은 행정기관이 몰린 수도이지만, 출퇴근자의 상당수는 인근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주에 산다. 워싱턴 거주자는 저소득층 흑인이 대부분이고, 특히 흑인 밀집지역인 동쪽은 낮시간에도 함부로 다니기 위험한 곳이다. 학생 성적은 전국 최하위, 중퇴율은 최상위권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논란을 무릅쓰고 두 딸을 공립학교가 아닌, 1년 학비 3만달러인 시드웰 프렌즈 사립초등학교에 보낸 것도 워싱턴의 이런 상황과 연관돼 있다.

이를 해결하려는 미셸 리의 방법론은 간단했다. ‘무능교사 퇴출’이다. 그는 재임기간 내내 오직 이 한 가지 목표를 꿋꿋이 밀어붙였다. 학생 성적을 잣대로 23개 학교 폐쇄, 교육청 직원 900여명 중 100명 해고, 자신의 두 딸이 다니는 학교를 포함해 교장 36명과 교사 507명, 교직원 424명 퇴출 등 칼바람을 일으켰다. 워싱턴 전체 교사가 4000여명이니 교사 10명 중 1명을 내보낸 것이다.

미국 교원노조의 랜디 와인가튼 대표는 “미셸은 초토화작전을 신봉하는 사람”이라고 비판했고, 미셸 리를 물러나게 한 차기 워싱턴시장이 유력한 빈센트 그레이 워싱턴시의회 의장은 “시속 100마일의 과속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미셸 리는 이런 비판에 “나는 아이들을 위해 일한다. 일부 어른들이 불쾌하건, 나를 욕하건 말건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미셸 리를 버락 오바마, 존 매케인, 빌 게이츠, 오프라 윈프리 등이 ‘공교육 개혁 전도사’라며 극찬했다. 칭찬은 보수·진보가 다르지 않다.

미셸 리의 목표이자 수단이었던 ‘성적’은 얼마나 올랐을까? 워싱턴 공립학교 8학년(중2) 학생들의 수학성적이 2003년 243점(500점 만점)에서 2009년 251점으로 8점 올랐다. 상승률은 전국 평균의 2배다. 상당한 성과다. 그래도 전국 순위는 겨우 최하위에서 디트로이트 등 3곳을 제친 수준이다. 전국 평균(282점)과도 차이가 크다. 워싱턴 학생들의 성적이 앞으로도 계속 오를 것으로는 기대되지 않는다. 학생들의 가정·교육환경, 학부모 소득, 도시환경 등 토대가 바뀌지 않는 상태에서 ‘무능교사 퇴출’이라는 한 가지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학생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선생님이 학교를 떠나고, 심지어 학교가 문을 닫고,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 하는 워싱턴의 흑인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워싱턴에 인접한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와 메릴랜드주 몽고메리 카운티의 학업성적은 전국 1~2위다. 내가 사는 페어팩스 카운티에서는 무능교사 퇴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우수교사들이 몰리고 학부모들의 교육열도 높아 나태하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거의 없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 선생님에게 미셸 리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존중(respect)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교사들의 직업적 자존감을 잃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한국 교육계에서 ‘미셸 리를 배우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의 정책은 미국에서 최하위 수준의 학업상태를 보이는 곳에서 일어난 일이다. 미국도 이를 전역으로 확대하진 않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 말아야 할 이유다. 그러나 미셸 리의 ‘충격과 공포’ 전략이 워싱턴의 교사사회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을 공습할 날도 멀지 않은 듯해 그를 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어쨌든 세상은 지금도 그쪽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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