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1.29 19:15
수정 : 2012.11.2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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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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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한없이 쓸쓸해 보였다.
지난 주말, 베이징 천안문(톈안먼) 광장에 있는 중국국가박물관에 갔다가 나오는 길에 건물 한쪽에 버려져 있는 공자의 동상을 ‘발견’했다. 원래 이 거대한 청동상은 지난해 초 천안문 광장 한쪽에 위풍당당하게 세워졌다. 몇달 뒤 동상은 슬그머니 치워져 박물관 부속건물 모퉁이 풀밭 위에 유폐되어 버렸다. ‘쫓겨났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이렇게 초라하게 서 있을지는 몰랐소’라고 말이라도 걸고 싶었다.
쫓겨난 공자는 중국 공산당의 고민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들은 공산주의를 지우고 자본주의를 확대하면서도, 공산당의 통치는 흔들림 없이 유지해야 한다. 여기에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이름을 붙이고, 유교의 가치나 중화주의를 강조해 정통성을 강화하려 한다. 중국 공산당이 2020년까지 목표로 내세운 ‘샤오캉(소강) 사회’도 유교 경전 <예기>에서 따온 것이다.
중국 새 지도자로 등극한 시진핑은 부패한 탐관오리 척결을 최대 과제로 외치고 있다. 지난 15일 최고 지도자로서 첫 연설에서 “당원 간부들의 부정부패, 민중과의 괴리, 형식주의, 관료주의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했고, 17일에는 “부정부패를 척결하지 않으면 당과 국가가 망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중국 새 지도부는 곧 부패 관료들에 대한 대대적인 정풍운동을 벌여 공산당의 합법성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황제가 탐관오리들을 엄단하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려 하는 것은 과거 중국 역사에서 자주 등장하던 모습 아닌가.
이런 신호가 나오자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중국인들이 관리들의 추악한 행동들을 잇달아 고발하고 나서면서, 중국 언론과 인터넷에선 연일 ‘탐관오리 열전’이 펼쳐지고 있다. 충칭시 베이베이구의 레이정푸 구장(시장급)은 건축회사 사장으로부터 ‘뇌물’로 상납받은 18살 소녀와 성관계를 맺는 동영상이 폭로돼 곧바로 해임됐다. 헤이룽장성 한 방송사의 여성 아나운서는 시 고위 간부로부터 10년 넘게 성폭행을 당해 왔다고 웨이보에 실명으로 고발했다. 선전시의 말단 당 간부가 80채의 주택을 보유한 축재 상황도 폭로됐다.
하지만 권력과 돈이 일당통치 체제에 모두 집중되고 감시와 견제는 받지 않는 현재 중국 정치 시스템이야말로 특권층이 막대한 부를 장악하고 부정부패를 저지르기에 완벽한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부패 관리 수만명을 처벌한다 해도 그것이 자라나는 토양을 바꾸지 않는다면 탐관오리 열전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공산당 지도부는 충성이나 통치의 제도화와 같은 유교의 일부 내용은 강조하지만, 유교의 다른 가치는 부담스러워하는 듯 보인다. 민이 하늘과 통하고 지배자가 천명을 잃으면 혁명이 일어나 왕조를 바꿔야 한다는 사상은 현재의 일당통치와 맞지 않는다. 유교의 이념을 체현하면서 국가를 비판할 수 있는 독립적 지식인 집단의 자리도 인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공자는 이렇게 쓸쓸하게 서 있는지도 모른다.
공자의 동상에 눈인사를 하고 천안문 광장을 지나 돌아오는 길은 참으로 험난했다. 택시가 서지 못하도록 온통 철책이 설치돼 있고, 지하철까지 가는 길은 통제에 편리하도록 몇개의 지하도와 도로로 격리돼 있고 수많은 검문을 통과해야 했다.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권위주의 체제로 휘황한 경제 성장을 이룬 이들은 무엇을 이토록 불안해하는 것일까.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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