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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17 20:54 수정 : 2009.09.16 10:20

윤지관 한국문학번역원장 덕성여대 교수

문화칼럼

방콕 시내의 타이작가협회 회의실에서 뵌 지 벌써 한 달여가 흘렀습니다. 협회건물이 한 원로작가의 기증으로 마련되었다는 말을 듣고, 올해 규모를 줄여 임대사무실로 이사한 한국작가회의의 궁색한 사정이 떠올라 부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서울로 돌아와서 그때 함께했던 은희경, 신경숙, 전성태 작가와도 뜻 깊었던 그날의 만남을 되새기기도 했습니다.

작가협회 방문은 우리 일행의 타이 행사의 마지막 일정이었습니다. 한국단편선집 <바다와 나비>의 출판기념회와 한국문학 세미나를 통해서 타이 문단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 모임에서 선생님이 타이 문학의 곤경을 진솔하게 피력하시는 것을 듣고 우리 일행은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타이 문학과 한국 문학은 70년대와 80년대에 사회민주화에 기여한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타이 문학은 심각한 침체에 빠져서 과연 문학이 있는가 하는 절망감이 지배하고 있다.” 한국 문학이 위기를 돌파하면서 새로운 작가들을 창출해낸 것에 비하면 타이 문학의 현실은 너무나 암담하다는 선생님의 발언에 우리 모두는 숙연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더 큰 충격은 이 퇴보에, 다름아닌 한류가 끼친 악영향도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동방신기가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떠오르는 한편, 질 낮은 한국 대중문학이 젊은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고 합니다. 타이 청소년들이 한국 선남선녀들의 연애 이야기에 빠져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선생님께서 ‘쓰레기 같은’ 한류 소설의 폐해를 지적할 때는 뜨끔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바다와 나비>의 출간이 한국 문학의 본령을 타이 독자에게 전달하고 한국인이 타이인과 유사한 경험과 고민을 하며 살고 있음을 알 계기가 되리라는 것이 선생님의 취지였지요.

돌아와서 알게 되었습니다만, 선생님은 30대이던 1970년대부터 문학잡지 <책세계>를 창간하는 등 쿠데타로 점철된 어려운 시기에 문학운동을 주도하셨더군요. 또 이후로도 타이 문단과 예술계의 중심에 서 오시기도 했고요. 그 자리에서 제가 감히 타이 문학의 현실을 극복할 조언으로, 한류 소설의 독자들을 ‘진지한’ 문학 독자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 것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국외자로서 쉽게 말했으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한국 문학의 중요 성취를 번역을 통해 소개함으로써 타이 작가들의 싸움에 동참할 수 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한류를 활용하고 또 넘어서려고 함께 노력하는 가운데 양국 작가들의 연대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 이번의 만남에서 얻은 인식입니다. 한국 문학의 번역을 지원하는 기관의 장으로서도, 이런 기관의 존재 자체가 타이와 한국의 현재의 차이를 말해주는 것이라는 말씀이 반가웠습니다.

보도를 보니 아직도 타이 정정은 불안하고 민주개혁의 전망은 뚜렷해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도 시련을 겪고 있는 요즘이고 보면, 문학이 제 몫을 찾는 사회를 이룩하려는 어떤 연대의 희망이 어려운 싸움에 같이 나선 동지들을 생각하게 하듯 타이의 친구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부디 건강 건필하시기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윤지관 한국문학번역원장 덕성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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