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07 22:03
수정 : 2009.09.1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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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곰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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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과 불꽃축제를 보았다. 아니 광안리에서 술을 마시려 했는데, 때마침 쇼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술맛은 났다. 하지만 저걸 왜 하는지. 미국발 금융위기로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나고 있는데, 보고 힘내라구? 자유낙하하는 밤하늘의 불은 아름다웠지만, 물량 공세일 뿐이어서 10분쯤 지나자 스토리가 거세된 ‘포르노그래피’를 보는 듯했다. 이유 모를 불꽃쇼에 ‘국제앰네스티 양심수’의 출소를 약 10개월 늦게 부산시가 축하하는 거라고 우리끼리 억지 이유를 달았다. 보름 남짓 전의 일이다.
인터넷에서 부산역 광장 분수대를 ‘최첨단’으로 바꾼다는 기사를 본 것은 사흘 전이다. ‘밤에는 레이저를 쏘고, 워터 스크린으로 영상을 표출하고, 겨울에는 물 대신 불기둥을 연출’하는 40억짜리 분수. 넓이도 지금 있는 40년 된 것보다 세 배 커진다. 분수대를 바꾸는 이유를 이번에는 시가 밝히고 있었다. 지름 37m에 물줄기 높이도 10m에 불과한 기존 분수대는 부산의 도시 위상에 맞지 않아 초라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는 것이다.
이성훈 경성대 교수가 프랑스 사상가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 개념을 설명하는 글을 본 적 있다. 유럽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을 포함한 거의 모든 일상이 파편화의 길을 가고 있으며, 이런 파편화된 일상을 거짓으로 통합하는 것이 스펙터클이라는 것이다. 소외된 노동자들은 스펙터클한 구경거리의 수동적 소비자가 될 뿐이다. 부산시가 4년째 의욕적으로 하고 있는 국내 최대의 불꽃쇼, 거기다 오래되어 더 값지다고 할 튼튼한 분수대를 도시 위상 운운하며 교체하려는 짓도 드보르의 ‘스펙터클’ 개념에 딱 들어맞는다. 닥치고 보기나 해, 아아, 이야, 감탄음은 허용한다!
역 광장은 낭만적인 공간이다. 만남과 헤어짐, 떠남과 돌아옴이 동시에 발생한다. 그것은 우리네 인생의 시적인 요약과도 같다. 무의식적 차원에서 ‘삶과 죽음’을 경험하기에 사람들은 무의식적 차원에서라도 순수해진다. 자본주의형 인간이 ‘역 광장 인간’이 되어 버린다. 시청 앞에는 노숙인이 없지만 역 광장에는 있는 것도 그 특유의 시정이 흐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역 광장이 관용의 공간이어야 한다고 본다.
‘스펙터클’은 잘난 서울이나 하도록 하고 부산은 좀 다른 도시를 꿈꾸어 볼 수 없을까. 분수대의 물이 광장 쪽 배수로를 통해 흐르도록 하여 먼지를 없애고, 수로를 따라 시멘트를 엎어 버리고 화단과 텃밭을 조성할 수 없을까. 그 텃밭을 노숙인들이 가꾸도록 독려할 수 없을까. 열차를 타고 와서 타지인이 맨 처음 보는 것이 현란한 분수대의 물춤이 아니라 상추와 깻잎이 자라는 텃밭일 때, 외려 기분좋게 충격적인 부산의 첫인상이 되지 않을까. 노숙인들이 텃밭 가꾸는 도시가 있다, 없다? 텔레비전에 나오도록 해 보자. 도시 안에서의 생태적 발상이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일이 있어 중앙동에 갔다가 들른 부산역. ‘접근금지’ 펜스 안쪽 분수대의 가장자리 잔디밭이 참 아늑했다. 녹색 털이 배 쪽에 복스럽게 난 작은 새가 관목 가지 사이에서 지지즈즈 하고 있었다. 잠자리가 분수대 고인 물에 알을 낳고 있었다. 이걸 40억 들여 싸그리 없앤다고?
김곰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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