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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14 19:24 수정 : 2009.09.16 10:19

문화칼럼

<베토벤 바이러스>가 종영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상황에서 시작해 대단원으로 막을 내린 이 드라마에 대해 방송계에서는 ‘드라마의 혁명’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 훈훈한 영향력은 클래식계에도 퍼지고 있다. 연말연시 상설 프로그램인 서울시향의 베토벤 ‘합창’ 교향곡 공연이 올해따라 일찌감치 매진되었으며, 여타 오케스트라들의 공연도 매표율이 꾸준히 증가 추세를 달리고 있다. 음반업계도 마찬가지다. 유니버설 뮤직 코리아에서 발매된 <베토벤 바이러스> 오에스티 음반은 한 달 만에 3만5천장이 넘게 팔리며 클래식 차트 1위를 점령했다. 베스트셀러의 기준이 5백장 안팎에서 결정되는 클래식 음반계의 열악한 환경을 따지면 획기적인 사건이다.

<베토벤 바이러스>가 이처럼 클래식 음악계에 실제로 영향을 끼치리라는 생각을, 그 분야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은 사실 하지 못했다. 이 드라마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그리고 준비 단계에서 제작사 쪽의 좌충우돌 소식이 들려올 때, 음악인과 그에 관련된 종사자들의 마음은 기대보다는 우려의 마음이 더 컸다. <노다메 칸타빌레>의 광풍이 앞서 불어간 시점인지라 더욱 그랬을 것이다. 모두가 이 극이 단지 노다메의 아류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다. 그 걱정은 드라마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어쭙잖은 드라마의 실패로 인해 대중들로부터 더욱더 거리가 멀어질 클래식계에 대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베토벤 바이러스>는 걱정을 불식시켰다. 차별된 내용을 통해 <노다메 칸타빌레>의 그림자에서는 일찌감치 벗어났다. 배우 김명민의 연기는 그의 지휘를 볼 때마다 카라얀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여기에 조역들의 감초 같은 연기, 베토벤의 ‘합창’에서부터 (심지어는!) 케이지의 ‘4분33초’까지 적재적소에 배치한 훌륭한 곡들은 모두가 인정하듯 분명 훌륭한 견인차였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찬사를 아끼고 싶지 않은 대상은 바로 대본이다. 아바도니, 첼리비다케니 하는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나 통용될 전문적이고 특수한 단어와 이름들이 자연스럽게 소화된 것만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니다. “오케스트라를 완성시키는 데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강마에의 한마디는 우리 관현악계의 가장 큰 문제점을 속 시원히 찔러 주었다. “오케스트라에 퍼부을 돈으로 도로를 하나 더 닦는 편이 낫겠다”는 대사는 시향처럼 관이 주도하여 만든 악단이라면 언제고 들을 수밖에 없는 가슴 아픈 비난이다. ‘클래식은 할 일 없는 부잣집 왕자 공주들의 유희’라는 편견을 불식시켜준 것도 고맙다. 극이 묘사한 비주류들의 삶과 애환은 성공한 0.001퍼센트의 화려한 독주자의 모습보다도 더욱 현실적이었다. 이 모든 현실과 상황들을 수집하기 위해 땀 흘리며 뛰어다녔을 작가들의 노력이 눈에 훤하다. 그것들을 극중에 자연스럽게 녹여서 완성시킨 탄탄한 대본이야말로 연기와 음악을 한층 빛나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하고 많은 작곡가 중에서도 베토벤의 ‘합창’을 전방에 내세운 것은 이 드라마의 가장 훌륭한 시도였다. “고난을 겪어야 하는 우리들은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강마에의 역설적인 주장은 실제로 베토벤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어쩌면 빙하기까지 도래할지도 모를 거센 경제 한파를 목전에 둔 우리의 삶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 “고난에서 환희로” 나아갈 의지를 잃지 않을 ‘베토벤 백신’인 것이다.

노승림/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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