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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12 19:33 수정 : 2009.09.16 10:18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문화칼럼

지난달 24일 비의 ‘레이니즘’과 동방신기의 ‘주문-미로틱’, 다이나믹 듀오의 ‘트러스트 미’ 등 최근 인기 있는 노래들이 줄줄이 청소년 유해 판정을 받았다. 가요계가 패닉에 빠졌다. 그냥 유해 판정만 받았으면 그러려니 할텐데, 19금 딱지가 붙고 별도의 포장을 거쳐야 하며, 나아가 청소년들에게는 판매할 수 없단다.

이번 판정을 내린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는 ‘레이니즘’의 가사 일부인 ‘매직 스틱’이라는 단어가 남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상징한다고 한다. 더 가관은 ‘주문-미로틱’이다. 이 노래는 특정 가사가 아닌, 전체적인 맥락이 선정적이라 하여 유해 판정을 받았다. 이건 뭐, <백 투 더 퓨쳐> 촬영 현장에 들어온 기분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생활을 꾸려 가는 몇몇 위원들이 테이블에 앉아 “음, ‘매직 스틱’이라니 참 거시기하네요” “수억개의 나의 크리스탈이라니 이 또한 거시기하군요” 뭐, 이런 대화를 나눈 후에 유해 딱지를 붙이는 모습이라니, 1970년대 공연윤리위원회의 지엄하신 풍경과 정확히 일치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청년문화가 폭발하던 70년대, 높디높으신 어른과 부하들께서 그들의 자유분방한 차림새와 음악이 썩 보기에 좋지 않으셨더랬다. 그리하여 공연윤리위원회를 통해 온갖 노래들을 금지곡으로 묶으셨더랬다. 이유도 각양각색. ‘왜색풍’ ‘비탄조’ ‘불신풍조 조장’ 등등. 심지어는 ‘가창력 미숙’ 같은, 개그 콘서트를 방불하게 하는 사유도 있었다.

겨우 몇 곡에 대해서 그랬을 뿐인데, 그때와 지금을 같은 선상에 놓는 건 확대해석 아니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문제는 겨우 몇 곡이 아니라는 거다. 지난 5월 출범한 청소년보호위원회는 그동안 매달 평균 100곡씩, 총 500여곡의 노래에 대해 유해 판정을 내렸다. 하필이면 이번에 당대 최고 인기 가수들의 최고 인기곡이 유해 판정을 받아 이슈가 됐을 뿐이다. 과연 얼마나 구체적인 잣대가 있었을까. 비와 동방신기의 사례로 보건대, 70년대와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한국이 심의에서 자유로웠던 적은 없었다. 96년 음반사전심의제도가 철폐됐지만 공중파 3사에서는 각각 심의기구를 두고 모든 노래에 대해 방송심의를 해왔다. 한국 음악 산업에서 방송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해보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높은 장벽이다. 그런데 이것도 모자라 국가기관으로 사실상의 심의 기구를 개설하고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것이다. 이중 심의나 마찬가지다. 도대체 이 정부는 뭐든지 국가에서 통제하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는 걸까. 그래서 방송국에 무적의 낙하산 부대를 투하하고, 인터넷도 검열하려는 걸로 모자라 듣는 이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다를 수 있는 가사까지 국가에서 유해 여부를 판단하려 하는 걸까.

좋다. 그렇게 청소년을 사랑한다면, 그들의 판단력을 믿지 못하겠다면 정말 유해 판정을 내려야 할 건 따로 있다. 입만 열었다 하면 오해를 낳는 어떤 분은 청소년의 언어 능력 향상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도 있다. 기자들 앞에서 ‘이런 씨*’을 두 번씩이나 내뱉으신 어떤 분 또한 바르고 고운말의 주적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그런 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보도하는 9시 뉴스야말로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에 심각한 유해요소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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