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2.26 19:17
수정 : 2009.09.1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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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맑실/사계절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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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며칠 전 한 신문을 읽는데 독특한 사진 한 장이 눈에 띄었다. ‘시대의 양심’ 리영희 선생의 친필이 담긴 원고지 사진이었다. 뇌출혈로 쓰러졌으나 기적적으로 다시 일어난 선생의 필체에는 여전히 강고한 힘이 서려 있었다. 최근 선생의 자서전 <대화>를 읽고 그 신문에 글을 쓴 한 필자에게 잘 읽었다는 말을 전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잘못된 이데올로기로 꽁꽁 얼어붙어 있던 나의 역사의식을 처음으로 산산조각 내 버린 책이 바로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다. 대학 신입생 때의 일이다. 교과서는 글자 하나 틀림이 없는 그야말로 ‘교과서적으로’ 모든 것을 가르쳐주는 책이라 믿었던 내게 그 책은 하나의 큰 충격이었다. 나의 진실 찾기는 독재정권의 탄압 속에서 구속을 각오하고 쓴 정의로운 필자들과 번역자들의 책을 통해 계속되었다. 냉전과 군사독재 정권의 불온한 시대에는 진실을 찾아 그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불온서적’들이 끝없이 출간되었고, 진실 찾기에 목말라하던 수많은 독자들은 그 책들을 숨어서, 숨죽여, 숨기고 읽었다. 나의 이십대, 그 저항의 시대는 출판의 자유와 읽을 자유, 그리고 그 바탕인 문화의 다양성이 유보된 시절이었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맞이한 시대는 어떤가. 최근 10년간 그 어느 때보다도 문화의 다양성이 꽃을 피운 것처럼 보였다. 출판에서는 다양한 주제의 번역서들과 국내 집필서들이 활발하게 출간되었다. 연극, 영화, 음악도 마찬가지다. 또한 다양한 체험을 위한 외국여행과 외국유학이 일상적인 일로 자리 잡았다. 나의 이십대에 비해 최근 10년 동안의 다양성은 아름답고 풍요롭게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불온한 시대의 불온한 그림자가 다시 드리워지고 있는 지금, 그 다양성은 왠지 기반이 허약해 보인다.
국방부는 현기영 선생의 탁월한 성장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를 ‘북한을 찬양하는’ 불온서적으로 둔갑시켜 버렸다. 코뚜레 뚫는 그 아픈 순간에도 소가 웃을 일이다. 뉴라이트의 좌편향 타령으로 시작된 역사교과서 문제도 도를 넘었다. 정부는 검정교과서를 저자의 동의도 없이 수정 압력을 넣어 고쳐 버렸다. 역사를 보는 시각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주무르는 30여년 전 군사독재 정권의 버릇이 다시 도진 것이다. 일제고사일에 체험학습을 허락해 주었다는 이유로 교사들에게 해직과 파면이라는 중징계가 내려졌다. 1000분의 1의 반대도 용납 못하는 천편일률적인 교육의 부활이다. 전 국토를 공사판으로 만들 대운하 사업 또한 ‘4대강 정비’라는 명목으로 다시 시작되었다.
이러한 때에, 출판인으로서 최근 10년간의 다양성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자성해 본다. 문화의 다양성은 시대의 불온을 걷어내는 바탕이기 때문이다. 문명의 진정한 근원에 대한 거대 담론은 외면한 채, 혹은 그것을 일상 속으로 끌어내지 못한 채 겉만 포장된 다양성을 다양성이라 착각했던 건 아니었던가. 뿌리 깊은 진정한 다양성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고 성장하려면 아직 멀었다. 하늘의 별빛만 보고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알 수 있는 시대가 이미 아니기에, 새해를 맞으며 출판의 진정한 다양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강맑실/사계절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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