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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27 18:50 수정 : 2009.09.14 18:54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문화칼럼

3월20일 에스토니아 수도인 탈린의 건축박물관에서는 ‘메가시티 네트워크’라는 이름의 ‘한국현대건축전’이 개막되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에서 거푸 열렸던 한국 건축가들의 전시 작품을 그곳으로 옮기는 비용과 전시장 설치비 그리고 홍보비용 일체를 에스토니아 쪽에서 부담하겠다는 제안에 따라 이루어진 유럽에서의 세 번째 한국건축 초대전이었다. 개막식에 참가하러 탈린으로 향한 한국의 건축가들은 동유럽 국가들의 정치경제적 상황이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건축전시회가 과연 무사히 열릴 것인지를 반신반의하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전시는 소박하지만 격조 있는 형식으로 개막되었다. 에스토니아 정부 대표 등의 축하 속에 4월25일까지 한국의 현대건축을 북유럽에 알리는 작지만 커다란 첫걸음을 내디뎠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주변 강대국에 연이어 복속되었던 질곡의 역사를 딛고 1991년에 독립한 에스토니아는 2004년에 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에 가입한 인구 130만 정도의 작은 나라이다. 국토 면적으로 본다면 남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나라일 뿐만 아니라 신생 독립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독립과 함께 흩어져 있는 에스토니아의 건축 작품들을 한데 모으고, 왜곡되었던 건축 역사의 공백을 메우는 동시에 품격 있는 건축물과 수준 높은 공간 환경을 국민들이 향유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문화적 독립이라는 국민적 공감을 바탕으로 1908년에 지어진 뒤 소금창고로 이용되던 부둣가의 웅장한 건축물을 에스토니아 건축박물관으로 개조하면서 문화강국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한국현대건축전 개막 행사에 참가한 우리 건축가들은 출국 전에 하였던 걱정과 우려가 온통 부끄러움과 자괴감으로 변하는 쓰라림을 경험하였다. 건축박물관장이 초대한 저녁 자리에서는 누구랄 것도 없이 근사한 건축박물관을 가진 에스토니아의 문화적 저력에 대해 얘기했으며, 오래 묵은 성벽과 어깨를 나란히 한 붉은 지붕들 사이로 솟아오른 교회 첨탑이 아름다운 구시가지의 도시 풍경을 부러운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북유럽의 조그만 나라로 에스토니아를 깔보았다가 크게 한 방 얻어맞은 문화적 충격은 이국에서의 밤을 더욱 외롭게 했다. 한국의 건축박물관 설립을 위해 모두 힘을 모으고 노력과 봉사를 아끼지 않겠다는 열정을 ‘탈린 선언’이라 이름붙이기로 하였다.

건축기본법 제20조에는 국토해양부 장관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및 지식경제부 장관과 협의하여 건축물 및 공간 환경의 개선과 건축문화의 진흥을 위해 건축문화 관련 시설의 설립과 운영, 건축문화 사업, 건축이해 증진을 위한 교육, 건축의 국제교류 사업 등에 대해 국고 보조 등의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법조문의 ‘할 수 있다’라는 표현은 이제껏 ‘하지 않아도 된다’로 해석되어 왔다. 이를 부정적으로 읽거나 풀이하지 말고 ‘반드시 해야 한다’라고 해석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세계 10위를 다투는 경제규모에 상응하는 문화강국에 이르게 될 것이다. 건축박물관 건립은 문화강국이라는 목표를 향한 구체적 실천이며, 박물관을 통해 품격 높은 건축문화를 향유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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