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14 19:52
수정 : 2009.09.1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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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범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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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나 홍수로 재산과 인명 피해가 많이 생기고 난 뒤에 언론엔 ‘천재 아닌 인재’라는 기사가 꼭 실린다. 예방과 안전관리, 경보 등의 필요한 조처를 취하지 않아 피해가 훨씬 커졌다는 얘기인데, 이런 기사가 식상할 만큼 많이 나와도 할 수 없다. 그만큼 중요한 말이기 때문이다. 천재지변은 피할 수 없지만, 인간의 문명은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왔고 지금도 막대한 돈을 쓴다. 천재지변에 대처하는 시스템이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느냐는 건, 한 사회의 건강함을 측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그래서 재난영화의 상당수는 재난의 스펙터클을 전시하는 한켠에서 그 재난에 대처하는 그 사회의 시스템의 작동, 오작동 여부를 중요한 드라마로 끌고 들어온다.
해운대에 쓰나미가 밀려오는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조금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쓰나미가 올 가능성이 있나, 그걸 염려한 특별한 장치가 있나, 하는 의아함 때문이었다.(인터넷 지식검색을 해보니 한국에 쓰나미가 올 확률에 대한 답변은 ‘그냥 영화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10만년 안에 올 확률은 100%입니다’ 등등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해운대>를 보니 대다수 재난영화와 다른 전략을 쓰고 있었다. 이 영화는 재난에 대처하는 사회 시스템을 의제로 삼지 않는다. 한 학자가 쓰나미를 예고하지만, 무기력한 그의 말은 관객에게 쓰나미를 알리는 전조의 역할에 그친다. 영화에서 쓰나미는 느닷없이 불가항력적으로 닥쳐와선, 인간들의 크고 작은 갈등을 풀고 화해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동한 뒤에 사라진다.
실제로 많은 사람의 생명을 순식간에 앗아가는 대자연의 힘 앞에서 사람 사이의 다툼 따위는 하찮은 것일 터. 재난을 화해와 용서의 계기로 삼는 <해운대>의 전략은 그것대로 유효한 것이며, 다른 재난영화들이 부분적으로 사용했던 것이기도 하다. 또 쓰나미가 오기 전까지 중계되는 해운대 서민들의 일상이 살갑고 구수하며 곧 쓰나미가 올 거라는, 관객만이 아는 정보는 그 일상을 좀더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게 하는 효과를 성취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좋냐, 나쁘냐를 따지는 건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지난해 유일하게 한국 영화 역대 흥행 10위 안에 들어간 <과속 스캔들>에 이어 <해운대>까지 보고 나니(이 영화도 이미 10위 안에 들어섰다) 조금 엉뚱한 생각이 든다. 어떤 장르든 그 장르를 떠올릴 때 기대하게 되는 중요한 한 의제를 영리하게 피하면서, 그럼으로써 한국 사회의 문화나 시스템을 도마 위에 올리는 일을 생략한 채 그 장르의 나머지 재미들을 모아 드라마를 만드는 게 한국 블록버스터의 한 전략이 돼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과속 스캔들>의 주인공 연예인은 자신에게 숨겨둔 딸과 손자까지 있다는 게 알려질까봐 전전긍긍하는데, 막상 영화는 연예인 사생활에 대한 폭로 위주의 문화나 미혼모에 대한 편견 같은 걸 의제로 삼지 않고 기발한 코미디로 우회한다. <해운대>는 재난에 대처하는 시스템을 문제삼지 않으며, 쓰나미는 느닷없이 왔다가 사라지는 일회적 사건으로 끝난다.
물론 이 두 영화의 성취가 있고, 또 이런 영화도 있고 저런 영화도 있어야 한다. 갑자기 재작년에 본 <추격자>가 떠오른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고, 범인이 자백까지 했는데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시스템(경찰, 검찰, 시청)의 오작동을 묘사하면서 드라마를 꽉 채워 넣는 모습을 볼 때 무척 반가웠다. 결론? 간단하다. 이런 영화 못지않게 저런 영화도 많았으면 좋겠다.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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