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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9.04 18:30 수정 : 2009.09.14 17:31

이영미 대중예술평론가

지난 3월 시작한 부부 문제 솔루션 프로그램 <사주후애>가 순조롭게 6개월을 넘겨 안정권에 들어섰다. 이 프로그램은 제목에서부터 특정 프로그램을 연상시키는데, 바로 그 프로그램의 공과를 어떻게 넘어서는가 하는 지점이 성패의 관건이었다고 보인다.

“4주 후에 뵙겠습니다”라는 대사로 끝을 맺는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의 종방이 결정된 지난 4월, 솔직히 말해서 나는 홀가분하고 심지어 반갑기까지 했다. 이 프로그램이 사랑받는 장수 프로그램이었음은 분명하지만, 이미 실화 소재의 드라마로 부부 문제의 해결을 모색해 본다는 기획 취지는 상실된 지 이미 오래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오랫동안, 일반 드라마에서는 하기 힘든 적나라하고 자극적인 소재를 압축 드라마로 보는 재미를 시청자에게 주어왔다. 각 소재가 실화에 근거한 것이고 가정법원에서의 조정 결정 같은 장치로 문제 해결을 유도한다는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유도할 만한 어떠한 장치도 없이 관습적 스토리텔링을 요약판으로 보여주는 방식이었고, 따라서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는 부부 갈등 이야기에 몰입하여 보는 시청자들에게 그저 자극적 소재로 소비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의도와 어긋난 이런 결과는, 부부 문제에 대한 이 프로그램의 낡은 접근법 때문이라고 보인다. 가정 문제 솔루션 프로그램은 해방 직후의 <인생 역마차>부터이니 장구한 역사를 지녔지만, <부부클리닉>에 이르기까지 그 해결은 늘 이해와 사랑을 ‘말로만’ 강조하는 일종의 훈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부부클리닉>이 법원을 설정하고 있지만, 법적 판단은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조정위원들은 약간의 훈계와 ‘4주 후에’를 반복하고 있었다.

새롭게 안착한 <사주후애>가 의미 있는 것은, 바로 부부와 가족의 문제에 대한 시각의 정체를 벗고, 이를 ‘치료’해야 할 문제로 보는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시선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문제 부부에 대해 심리극을 비롯한 다양한 심리치료, 행동방식의 교정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하고, 이를 통해 부부가 해야 할 일을 문서화하여 구체적인 조정 결과를 발표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눈물 흘리며 반성하고 사랑을 다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인간의 말과 의식과 의지 저 너머를 끄집어내어 치료하고 변화된 행동을 습관화하며 그 약속에 대해 법률적 책임을 지는 것이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분열적이고 복잡한 존재라는 것, 진실, 사랑, 화해, 봉사 같은 말과 마음이 유의미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저 진심을 다한다는 의지나 선언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 그 너머의 무의식과 습관에 대해 냉철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결국 교정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적 지침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점을, 이제 부부 문제에서조차 인정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서도 찜찜하다. 이렇게 멀쩡하게 잘 아는 방송인들이, 왜 여전히 정치 보도는 ‘정책’과 그 실천적 결과를 냉철하게 분석하기보다는, ‘정쟁이 아닌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라’고 훈계만 해대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영미 대중예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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