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9.25 19:46
수정 : 2009.09.25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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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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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신종 인플루엔자가 퍼지면서 우리나라에도 비상이 걸렸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신종 전염병이 인류에 재앙이 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그런데 비상이 걸린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양서류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개구리, 두꺼비, 도롱뇽같이 물과 뭍 양쪽에서 살아가는 동물을 양서류라고 하는데, 이들 양서류에게도 몹쓸 신종 전염병이 나타난 것이다.
세계적으로 양서류를 위협하고 있는 신종 전염병은 일종의 곰팡이가 원인체인 항아리곰팡이병(chytridiomycosis)이라는 질병으로, 지구촌 양서류 감소와 멸종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병원체인 곰팡이가 항아리 모양을 닮아 우리말로는 이런 이름으로 옮겨 부르게 됐다.
이 곰팡이병에 대한 감수성은 같은 양서류라 해도 종에 따라 다양하나, 감수성이 높은 종은 감염된 개체군의 90~100%가 폐사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러나 어떤 종은 병원체에 감염돼도 아무런 증상을 보이지 않으면서 다른 종에게 병을 전파하는 매개자 구실을 한다. 항아리곰팡이는 물속에서 홀로 생존이 가능하며, 같은 물웅덩이에 사는 다른 개구리의 피부에 침입해 피부호흡을 하지 못하게 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항아리곰팡이병은 양서류 세계에서 보면 지금까지 알려진 어떤 전염병보다도 가장 위험한 최악의 질병으로 여겨질 만하다.
그런데 우리 연구팀이 지난 2년 동안 야생과 애완용 개구리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바로 이 항아리곰팡이병이 국내 양서류에서도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돼 얼마 전 국제 전문 학술지에 이런 사실을 보고했다. 조사 결과, 애완용으로 사육하고 있는 개구리뿐 아니라 야생 생태계의 개구리들에서도 항아리곰팡이가 검출됐다. 그러므로 한국의 양서류를 치명적인 항아리곰팡이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 됐다. 그렇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항아리곰팡이병은 국제적인 양서류 무역에 의해 지구촌 여러 곳으로 전파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먼저 수입 외래종 양서류에 대해 적절한 검역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국내 사육 및 야생 양서류에 항아리곰팡이병이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 세밀히 조사하고, 국내 양서류 종들이 항아리곰팡이병에 어느 정도 감수성을 지니는지 파악하기 위한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 이런 현황 파악과 연구 결과가 나와야 적절한 방역과 보전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애완용 개구리 등 양서류를 사육하는 사람들은 키우던 양서류를 야외에 함부로 방생하는 일을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개구리를 세밀히 관찰해 이상 증상이 나타나거나 뚜렷한 이유 없이 죽는다면 지체 없이 전문기관에 문의하는 것이 좋으며, 야생 개구리, 두꺼비, 도롱뇽을 함부로 잡거나 이동시키지 말아야 한다.
양서류가 사라지면 양서류가 잡아먹던 곤충들은 더욱 많아질 것이며, 이들을 매개체로 삼아 전파되는 말라리아 같은 질병들이 번창하게 되고 농작물도 해충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개구리 세계에 닥친 위기는 곧 인간 세계의 위기 경고등이다. 이런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려는 노력은 전적으로 인간의 몫이다.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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