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2.25 21:20
수정 : 2009.12.2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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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각 작가·풀꽃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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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가는 연말에 한 사내를 만났다. 얼굴도 모르고, 앞으로도 볼 일이 없겠지만, 나는 이 사내를 만나기 위해 9년을 기다렸다. 사내의 이름은 프리먼 하우스. 연어를 죽이는 것이 생업이었다가 연어를 살리는 일에 삶을 바친 야생의 사내였다. 마침내 그가 생전 처음 쓴 책이 번역되어 나온 것이다. 원제는 <토템 연어>(Totem Salmon), 번역책은 <북태평양의 은빛 영혼 연어를 찾아서>로 나타났다. 번역한 이는 우리 연구소의 연구원인데, 그 젊은이는 20대와 30대 초반을 연어에 미친 사내와 함께 보냈다. 그만큼 이 책에 담긴 사내의 문체는 섬세했고, 그가 겪은 체험은 진지하고 깊었고, 준열하면서도 황홀했다. 그는 연어를 정신적 존재라고 여겼다. 그뿐인가. 사람이 지니지 못한 ‘신비로운 지성’을 지닌 물고기로 생각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폭포나 다른 장애물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힘과 기품이 필요하고, 홍수로 불어난 물살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요하며, 거대한 통나무들이 가로막고 있는 미로를 헤치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지구력이 필요하다. 연어의 이러한 속성은 너무나 놀랍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자신이 태어난 시내와 나머지 수중세계의 냄새를 구분할 줄 아는 신비로운 지성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그는 무엇보다도 연어가 자연에 베푸는 모성적 헌납에 깊이 감동했다. 그것은 산란을 마친 연어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면밀한 관찰로 드러난다. 교미를 끝낸 연어는 지친 몸을 물결에 맡긴다. 이제는 피할 일도, 두려워할 일도 없다. 통나무나 바위에 걸쳐진 채 며칠이고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소진의 몸으로 떠 있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산란이 성공적으로 끝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던 독수리, 곰, 수달 등이 비로소 나타난다. 숲속에서는 황홀한 연어 향연이 벌어진다. 바다 깊은 곳에서 연어가 날라 온 풍부한 영양분이 숲으로 이동하는 순간이다. 숲의 짐승들이 먹다 남긴 연어의 찌꺼기는 훗날 후손들의 먹이가 될 미생물들의 차지가 된다. 사람들 역시 독수리나 곰처럼 연어의 일생에 개입한다. 강의 하류에 살던 토착원주민들은 연어를 잡되, 상류 사람들 몫을 생각하고 일부만 취했다. 연어와 함께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깊이 자각한 품위있던 사람들의 절제할 줄 아는 태도였다. 한때 엄격히 지켜졌던 이 단순하고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순환의 위대성에 그는 전율한다. 그리고 “이렇게 고마운 행성이 어디 있을까”라며 감사한다. 하지만 그가 연어 사냥꾼에서 연어를 살리는 사람으로 변신할 즈음, 이미 연어는 멸종하기 시작했다. 자연을 오로지 자원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자연의 위대한 순환에 난폭하게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숲과 바다가 굳건하게 연결되어 있었건만, 사람들은 바다를 오염시켰고, 숲을 없앴으며, 연어를 남획한 것이다.
내가 만난 이 사내의 기록은 남의 나라 연어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또한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대단히 중요한 어떤 것을 위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들면 안 되는 것이 있는 법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경탄할 수 있는 감성과 겸손의 능력을 잃어버리고도 여전히 온전하게 잘살 수 있다고 믿다니. 분별없이 자행되는 탐욕적인 파괴를 담보로 얻게 될 풍요는 단언컨대 발전도 아니고 ‘진짜 풍요’도 아닐 것이다.
최성각 작가·풀꽃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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