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1.08 21:20
수정 : 2010.01.0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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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범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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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남자 김씨와 박씨가 영화 <아바타>를 보고 극장을 나온다. 김씨가 속이 불편한 듯 배를 만지며 심호흡을 한다. 박씨가 그걸 보고 웃는다. 김 “입체화면이 실감은 나는데 고소공포증을 유발시키더라고. 넌 괜찮냐?” 박 “한 소설가가 80살이 넘으니까 중력이 예전보다 불친절하고 난폭해진다고 그러던데, 너도 그 짝인 모양이다. 40대에 벌써 그럼 어쩌냐.” 김 “그런데 이게 재밌어?” 박 “재밌구만. 고소공포증은 네 탓이지, 왜 영화를 트집 잡아.”
김씨가 박씨를 가까운 카페로 끌고 들어간다. 김 “지구 자원이 고갈돼 외계 행성의 에너지 자원을 캐러 갔다, 그런데 그 행성은 외계인, 동식물, 광물까지 서로 소통하며 에너지를 나누고 재생하는 유기체였다, 외계인들이 자원을 못 캐게 하니까 지구인들이 그들을 학살하려 한다, 지구인 중 한명이 외계인 편이 돼 지구인과 싸운다, 지구인을 물리치고 자신도 외계인이 된다, 이런 거잖아.” 박 “그래, 무슨 문제야.” 김 “그런 외계인이라면 지구인보다 정신적으로 훨씬 성숙한 문화를 갖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런데 지구의 미개인들처럼 그리고 있잖아. 원시부족의 권력체계를 갖고 있고, 질투심 많고 멍청한 놈이 권력 후계자이고.” 박 “그 정도는 넘어갈 수 있는 거지. 그래야 주인공이 그들에게 해줄 게 생기잖아.” 김 “바로 그거야. 관객들에게 그런 인상을 주잖아. 저들에게 뭔가 해줘야 한다. 저들은 배워야 한다. 실제로 주인공이 그들의 리더가 되고.”
박씨가 흥분하는 김씨를 보며 웃는다. 박 “외계인이 주인공보고 그러잖아. 두려움을 모르는 영혼이라고.” 김 “두려움을 모르는 놈이 얼마나 위험한 놈인 줄 알아? 그런 애가 큰 사고 친다고. 두려움을 버리고 미지의 세계로 가라. 이게 개척주의잖아. 겉으론 제국주의와 싸우면서, 제국주의적 욕망을 내면화시키는 텍스트가 아니냐고.” 박 “지구인 침략자와 싸우잖아. 미국에서도 공화당 지지자들이 이 영화를 두고 부시 정권의 이라크 침공을 비난하는 민주당의 음모라고 한다잖아. 너 같은 반응은 제국주의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나오는 콤플렉스야. 요즘 젊은 애들은 그런 거 없을 거라고.”
김씨가 물을 한 모금 삼킨다. 김 “이게 환경 문제를 다루잖아. 그럼 봐봐. 지구 환경이 이 모양이 된 게 인간이 욕심을 하나도 안 버려서잖아. 그런데 주인공도 지구인적인 욕심, 세속적 가치를 하나도 안 버린단 말야. 결국엔 사랑도 얻고, 온전한 육체도 얻고, 권력까지 얻잖아.” 박 “그럼 수천억원 들인 영화에서 세속적 욕망을 버리는 주인공을 만들라고?” 김 “행성 전체와 소통하는 외계인이라는 집단을 제시했으면 좀더 설득력 있게 파고들어가야지, 그들을 편의적으로 대상화했다가 동일시했다가 하면서 뻔한 이야기 전개의 도구로만 쓰잖아. 이야기의 법칙 중에 기대는 저버리지 말되 예상은 빗나가게 하라는 게 있다고. 이건 예상할 게 아예 없는 거야.” 박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아니 압도해버리는 스펙터클을 보는 데에 전혀 부담이 없잖아. 그렇게 스토리 만들기 쉽지 않아요. 그리고 이렇게 혁신적인 기술적 성취가 나왔을 땐, 열린 자세로 관대하게 대하는 게 중요해. 안 그러면 꼰대 소리 들어요. 이 고소공포증 환자야.”
김씨가 다시 속이 불편한 듯 배를 만진다. 김 “속편 만든다는데, 외계인들이 지구인 닮아가면서 내부 분열을 일으키려나? 주인공은 메시아가 되고? 성경이네.” 박 “어쨌든 궁금해서 속편 보겠네?” 김 “춥다. 집에 가자.”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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