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0.21 19:27
수정 : 2011.10.21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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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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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너절하고 비루할지라도
어떻게든 넘어야할 삶이기에…
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무렵 나는 군사작전지역인 향로봉을 제외한 남쪽 백두대간의 마지막 구간인 진부령을 넘고 있을 것이다. 지난 20개월 동안 진행했던 도상거리 640㎞의 능선에 진입로와 탈출로를 합쳐 약 768㎞에 이르는 백두대간 종주가 바로 오늘 끝난다. 지리산에서 시작한 발걸음이 백두산까지 미치지는 못했으나 오로지 ‘온몸으로 온몸을 밀어’ 한반도 산줄기의 거지반을 지르밟았다. 지리산과 남덕유산과 속리산과 소백산과 태백산과 설악산 등 명산을 두루 넘으며 비바람과 눈과 불볕에 고루 시달리고, 꽃과 새와 독초와 땅벌을 만나며 숱한 오르막과 내리막과 암벽과 너덜겅을 거쳤다. 내 생애 가장 치열했던 두 해가 그렇게 지났다.
애초에 능란한 산꾼이라기보다 형편없는 ‘평지형 인간’임을 고백하고 나선 길이었지만 끝판에 이르러 돌이켜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무모한 짓이었다. 일상은 오롯이 산행 일정에 맞춰져 부자유스럽고,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들은 갑작스런 충격에 비명을 질러댔다. 단단히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 공연한 객기로 만용을 부렸다고 후회하며 자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엔 그 또한 지나갔다. 도저히 넘지 못할 듯했던 봉우리를 오르고 도무지 감당하지 못할 듯하던 시간을 견뎌, 결국 오늘 나는 마지막 산을 넘는다.
끔찍하게 싫어했던 일이기에 꼭 하고 싶다는 모순된 동기를 앞세워 시작한 일이었지만, 실로 내가 산에서 배우고 얻은 것은 필설로 다하기 어렵다. 나는 종종 의식적으로, 때로 무의식적으로 산과 삶을 헷갈렸다. 산행에 앞서 불안과 두려움에 떨 때면 삶 앞에서 헐벗은 나를 생각했고, 힘겹게 산을 넘어 멧기슭의 주막에서 막걸리 한잔을 들이켤 때면 다만 살아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왜 오르느냐는 시비곡절에 상관없이 언제나 그곳에서 의연한 산처럼, 삶은 권리이자 의무인 동시에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사실이었다.
산 아래 사람의 마을에는 어둡고 차가운 시절이 다가오고 있다. 밀봉된 상자가 열리면 검은 새떼가 하늘을 뒤덮고, 털어서 먼지 정도가 아닌 방사능 분진이 매캐하게 피어오르고, 세상에는 이미 알고 있었다거나 이럴 줄 몰랐다는 악다구니가 넘칠 것이다. 그 와중에 마음과 몸이 헐벗은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외로워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슬픔으로 스스로를 죽이거나, 번쩍이는 분노로 일면식도 없는 이들을 난도질할 것이다. 아이엠에프(IMF)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의 롤러코스터를 올라탄 데 덧엎쳐 공감능력 제로의 소시오패스들이 칼자루를 휘두르는 한국 사회에서, 내림받은 영매가 아니더라도 그 정도의 묵시록적 세계는 얼마든지 예언해봄 직하다.
믿을 것도 도망칠 곳도 더 이상 없다. 월가 점령 시위에서 파생된 인터넷 사이트 ‘우리는 99퍼센트다!’(http://wearethe99percent.tumblr.com)에 사람들이 자신이 99%인 이유를 직접 써 올린 인증샷을 보면 그 참담함이 가히 국제적으로 느껴진다. 저임금, 워킹 푸어, 고용 불안 등…. 하지만 비록 너절하고 비루할지라도 어떻게든 끝끝내 넘어야 할 삶이기에, 떠밀리다 탈진하고 넘어져 낙오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든 나만의 근기와 속도를 지켜야 한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산행이지만 어디선가 함께 걷는 이들을 기억하며, 디스토피아의 협곡에서도 희망이라는 아득한 봉우리를 끈질기게 바라보아야 한다. 숨차다. 힘겹다. 하지만 산을 넘게 하는 건 고통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한 걸음 한 걸음뿐이다. 숨을 고르고 이를 악문다. 넘어온 숱한 산을 뒤로한 채 나를 기다리는 또 다른 삶을 향해, 다시 신발끈을 단단히 조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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