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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0.13 19:39 수정 : 2011.10.13 19:39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참여정부 시절의 정책과 관련한 논란이 일어도 변명으로 비칠 만한 얘기는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가끔은 내가 복무한 정부가 부당하게 폄훼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말해야 할 때도 있는 것 같다.

“국민을 속였다.” 정부에서 일할 때 이 말이 아주 싫었지만 유난히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심심찮게 들어야 했다. 능력이 부족해서 일을 그르쳤다든지 어리석었다는 비판은 감내할 수 있지만 국민을 기만했다는 비난은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참기 어려웠다. 사적으로는 평소 자식들에게 정직을 강조한 나의 말이 위선이라는 얘기니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나의 정치력 부족과 박덕함이 그런 오해를 낳지 않았는지 성찰도 했다. 그런데 위키리크스를 통해 드러난 외교전문이 나를 다시 이 불편한 세계로 끌어들였다. 2007년 4월 주한 미대사관의 외교전문은 한국 정부가 2004년에 주한미군기지 이전(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방위비 분담금을 전용하도록 양해했지만 국회와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한국 정부가 국민에게 주한미군 재배치 비용의 절반가량을 부담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는 93%에 달한다고도 했다. 이를 계기로 참여정부가 국민을 속였다는 비난이 일었다.

그러나 우리는 국민을 속이지 않았다. 나는 2006년 1월까지 청와대에서 이 일을 책임지고 있었다. 참여정부가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을 위한 대미협상을 시작한 것은 2004년 11월이었다. 수차례 협상 끝에 이듬해 4월 2005∼2006년 분담금에 대한 협상을 타결했다. 한·미는 2년간 분담금을 2004년 대비 8.9% 삭감된 연 6804억원으로 합의했다. 이 삭감은 한국이 분담금을 내기 시작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국은 협상 과정에서 방위비 분담금을 연합토지관리계획 사업에 전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전을 요구한 쪽이 비용을 부담하는 ‘원인제공자 부담’이라는 연합토지관리계획 협정상의 원칙에 따라 용산기지 이외의 미군기지는 미국 쪽의 요구에 따라 이전되므로 전용이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명분이 뚜렷한 우리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미국의 불만은 컸다. 미 국방부가 2002년에 이미 연합토지관리계획 사업 재원 중에서 미국 쪽 부담분 53% 중 40%를 분담금에서 충원한다는 계획을 의회에 보고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한국 안보를 위해 주한미군이 존재하는데 왜 미국이 이전비용을 내느냐는 의회의 지적을 피하려고 이런 계획을 내놓았는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어떤 합의도 하지 않았다. 미 정부는 의회의 견제라는 애로를 강조했지만 우리에게도 국민의 신뢰가 달린 문제였다.

2005년 방위비 분담금 한-미 협상은 매우 어려웠고 미국 쪽 인사들의 압력도 거셌다. 그해 2월 미 국방부 핵심관계자는 우리 협상 책임자에게 분담금 총액 감액 시 ‘현 수준의 연합 억지력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엄포를 놓고 분담금의 연합토지관리계획 전용 불가라는 한국 입장에 강하게 항의했다. 3월 초 백악관 안보부보좌관은 내게 전화를 걸어 분담금 사용 제한을 풀어줄 것을 요청했다. 4월 초에도 주한미군사령관이 국방장관을 예방하여 이미 잠정 합의된 분담금 감액과 분담금의 전용 불허로 연합전력의 정상가동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며 불만을 토해냈다.

만약 미 대사관 전문대로 2004년에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연합토지관리계획에 사용할 수 있도록 양해했다면 어떻게 2005년에 이런 일들이 발생할 수 있을까? 협상 책임자도 국방장관도 청와대도 모르는 한-미 간 양해가 무엇인지 미국 쪽에 묻고 싶다. 더욱이 참여정부는 연합토지관리계획 사업을 위해 방위비 분담금을 늘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깎았다. 2007년 분담금도 전년 대비 6.6% 증가한 7255억원으로, 2004년의 7469억원에도 못 미쳤다. 연합토지관리계획 사업에 국민 혈세를 퍼주었다면 어떻게 연평균 16%씩 폭증해온 분담금을 깎고, 그 증가율을 물가상승 수준으로 묶을 수 있었을까?

참여정부는 대미 협상에서 국민을 속일 이유가 없었으며 속이지도 않았다. 국민이 정부의 존립 목적인데 야바위꾼이 아닌 이상 무엇을 얻으려고 국민을 속이겠는가.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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