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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1.04 22:21 수정 : 2010.01.05 09:08

“간토 대지진때 민중들 범행”
‘그룹 봉선화’ 대표 니시자키
학살연도가 휴대폰 뒷번호
비문에 ‘두 민족 화해 염원’

지난해 8월29일 도쿄 스미다구 야히로에 추도비가 세워졌다. 일주일 뒤에는 그 자리에서 300여명의 일본인, 재일동포들이 모여 추도식을 했다.

비 앞면에는 슬퍼할 도(悼)가 크게 새겨져 있고 왼쪽으로 ‘간토대지지진 때 한국 조선인 추도지비’라고 써 있다.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있다. “1923년 간토대지진 때 일본의 군대, 경찰, 유언비어를 믿은 민중에 의해 많은 한국 조선인이 살해당했다. 도쿄의 서민 주거지에서도 식민지였던 고향을 떠나 일본에 와 있던 사람들이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귀중한 생명을 빼앗겼다. 이 역사를 마음에 새겨 희생자를 추도하고 인권 회복과 두 민족의 화해를 염원하며 이 비를 세운다.” 석비 옆에는 추도비 건립 내력을 기록한 금속판이 따로 있다.

다른 지역에 세워진 추도비와 달리 조선인 학살의 주체를 명시했다는 점에 특색이 있다. 이 비의 건립을 주도한 단체는 ‘간토대지진 때 학살된 조선인 유골을 발굴하고 추도하는 모임’과 ‘그룹 호센카(봉선화)’다. 호센카의 대표 니시자키 마사오(50)의 휴대폰 번호 뒷자리 4개는 1923이다. 이메일 주소에도 1923이 붙는다. 간토대지진 학살 문제에 매달리는 열기가 묻어나온다. 지난해 12월9일 야히로 전철역 앞에서 그를 만나 비가 세워진 현장을 둘러보고 그간의 경위를 들었다.

니시자키는 중학교에서 영어교사를 오래 하다가 몇년 전 눈병이 악화돼 퇴직했다. 물리마사지 일을 하다가 추도비 관련 작업에 전념하느라 그것도 그만두었다. 비가 있는 곳에서 3분 정도 걸으면 큰 제방이 나오고 그 밑으로 아라카와가 흐른다. 홍수 관리를 위해 만든 인공방수로인데 제법 커서 자연하천처럼 보인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낡은 목조다리 요쓰기바시가 있던 하천 부지가 참극의 현장이다.

이곳에서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이 처음 열린 것은 1982년이다. 초기에 모임을 이끌고 주도했던 사람은 기누타 유키에(1930~2008)였다. 소학교 여교사였던 기누타는 77년 학생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아라카와 방수로 일대를 답사하다가 마을 노인한테 조선인 학살을 들었다. 군대가 둑에 기관총을 설치하고 조선인들을 수십명씩 쏴 죽였다는 것이다. 유골이 그냥 묻혀 있으리라는 얘기를 듣고 번민 끝에 발굴을 결심했다. 82년 9월1일 기누타의 열의에 공감한 일본인과 동포들이 모여 추도식을 열고 발굴작업에 들어갔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니시자키도 대학 선배의 권유로 모임에 참가했다.

아라카와는 국가 관리하천이기 때문에 건설성과 사전에 힘든 교섭을 벌여야 했다. 시굴이 시작되자, 구경 나왔다가 구체적 증언을 해주는 노인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며칠간 계속된 발굴에도 불구하고 유골은 나오지 않았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연구자들의 조사 결과 유골을 다른 곳으로 옮겨 은폐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 관헌은 조선인뿐만 아니라 일본인 노동운동가와 사회주의자들을 잡아 처형했다. 일본인 유족이 유골을 돌려달라고 하자, 관할 경찰서장은 조선인들과 함께 묻었기 때문에 찾을 수 없다고 버텼다. 유족들이 1923년 11월13일 현장에서 독자적으로 유골을 수습하겠다고 통보하자 그 전날 인부로 변장한 경찰이 유골을 다른 곳으로 치우고 유족들의 현장 접근을 봉쇄했다고 한다.

기누타의 모임은 10년간 증언을 모아 1992년 <바람이여, 봉선화 노래를 날라라>라는 증언집을 냈다. 그리고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노인들이 숨져가는 마당에 더 이상의 증언 수집은 의미가 없다고 보고 추도비를 세우기로 했다. 회원들의 헌신적 노력 끝에 700여만엔의 성금을 모아 마침내 비를 세운 것이다. 원래는 하천부지 학살 현장에 세우려고 했으나 행정관청이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사유지를 샀다. 지금 비가 있는 자리는 회원들이 추도식 등의 행사를 마치고 모여서 담소하던 선술집이었다. 친해진 선술집 주인이 터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이들의 얘기를 듣고 매각에 동의했다고 한다.

도쿄/김효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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