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0.01.06 22:16 수정 : 2010.01.06 22:16

일제 때 도쿄의 한 소학교에 다니던 조선인 어린이의 통신부. 2학년(1939년) 때는 우리 이름이었으나, 3학년(1940년) 때는 본명을 두 줄로 지우고 일본식 이름을 써놨다.(왼쪽) 역사자료관에 전시된 간토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 그림. 화가 가와메 데이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원본은 국립역사민속박물관에 있다.(오른쪽)

[2010 특별기획 성찰과 도전] 경술국치 100년 새로운 100년
조선인 BC급 전범 기증자료·신간회 포스터 등

소학교 2학년 통신부에는 이무형이란 이름이 한문으로 써 있다. 그러나 3학년이 된 1940년 통신부에는 원래 이름이 두 줄로 지워지고 옆에 다케다 시게루라는 일본 이름이 있다. 4학년 통신부는 일본 이름만 있고 소학교도 국민학교로 바뀌었다. 창씨개명이 한 소년에게 실생활에서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자료다. 이 자료가 있는 박물관이 도쿄 미나토구 한국중앙회관 별관에 문을 연 것은 2005년 11월이다. 재일동포의 역사와 삶을 보여주는 이곳의 정식 명칭은 ‘재일한인 역사자료관’이다. 강덕상 관장에게 ‘이름을 짓느라 고생하셨겠네요’라고 말을 건넸더니 “그렇지요. 그런데 서울에서 오신 분들은 잘 모르더라고요”라고 받아넘겼다.

한인(韓人)은 널리 쓰이는 말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더욱 생소한 단어다. 한국인·조선인 등 편을 가르는 식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는 용어를 피하려고 선택한 말인 듯하다. 설립 취지는 개인의 신조, 소속 단체, 국적에 구애받지 않고 객관적 시점에서 재일동포(자이니치)를 총체적으로 망라하는 역사적 사실을 모아 보여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단이나 총련 소속뿐만 아니라 중립적 동포, 귀화한 동포, 재일동포나 한-일관계사를 연구하는 일본인 전문가 등 다양한 층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자세를 고수한 덕이 크다.

소장 자료는 문서·포스터·사진·영상물·생활용구 등 수천점에 이르고 도서도 6000권이 넘었다. 이 중에서 800여점을 추려 60평 규모의 전시실에 내놓고 있다. 강 관장의 지론은 방문자가 30분 정도 둘러보면 재일동포의 기본 역사를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인이 일본에 오게 된 역사적 배경부터 시작해 도항증명서, 협화회수첩, 신간회를 비롯한 민족단체의 포스터 등 각종 자료, 전후 민족교육을 지키기 위한 운동이나 차별반대 투쟁을 담은 사진 등이 빼곡히 전시돼 있다. 일본 패전 후 비시(BC)급 전범으로 몰렸던 조선인들이 기증한 약 40상자 분량의 전범 자료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비시급 전범들이 수감된 형무소에서 사용했던 수건, 프로야구계에서 차별을 이겨내고 금자탑으로 우뚝 선 장훈의 선수복은 모두 한 시대를 상징하는 자료다.

이곳에서는 1세들이 쓰던 다듬잇돌·빨랫방망이 등 생활용구도 귀중한 대접을 받는다. 일본 각지를 발로 뛰어다니며 동포들한테 기증받은 것이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요강을 찾아냈을 때는 모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불량 주거지구에 살던 시절 요강은 동포들의 필수품이었다. 단독 화장실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재일동포 박물관을 세우자는 발상은 1990년대에 태동했다. 1세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1980년대에는 그들의 삶을 활자로 남기자는 운동이 벌어졌다. 증언집이나 자서전을 내는 것이 일단락되면서 역사연구가 박경식을 중심으로 역사자료관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하지만 경비문제로 진척을 보지 못하다가 21세기 동포사회의 좌표를 고민하던 민단이 2002년 재정지원을 약속하면서 전기가 마련됐다. 2003년 7월 재일동포와 일본인 연구자 13명으로 ‘재일코리안 역사자료관 조사위원회’가 구성돼 밑그림을 그렸다.

역사자료관은 옥외테라스·도서영상실·세미나실도 갖추고 있어, 자이니치와 일본사회의 가교 구실을 한다. 실제로 방문자의 절반 정도가 일본인이다. 운영진의 가장 큰 고민은 경비 조달이다. 경기가 좋지 않아 민단의 재정지원 액수가 해마다 줄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본국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일본어로 돼 있는 누리집(www.j-koreans.org)에 한글판을 추가하는 것이 올해 주요 사업의 하나다.

도쿄/김효순 대기자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경술국치 100년 새로운 100년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