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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비시(B·C)급 전범들이 1956년 8월 하토야마 이치로 총리 면담을 요구하며 총리관저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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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특별기획 성찰과 도전] 경술국치 100년 새로운 100년
2003년은 한-일 문화교류에서 신기원을 연 해였다. 배용준·최지우가 주연한 <겨울연가>가 ‘후유소나타’로 개명돼 티브이(TV) 전파를 탔다. 일본의 중년 여성들을 중심으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관심 대상이 드라마에 그치지 않고 영화·가요 등 대중문화 전반으로 확산돼 갔다. 한류 붐이 일고 한국을 찾는 일본 관광객도 급증했다. 일본 정치인의 잇단 망언이나 독도 문제로 인한 한-일 간의 감정 대립, 나아가 남북한의 무력충돌 위험도 일본 여성들의 한국행을 막지 못했다. 이 폭발적 에너지를 두 나라의 역사적 화해 조성에 돌릴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 그렇다면 오만하고 무지한 정치인들이 뒤엉키게 만든 문제에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수 있을 텐데…. 아직은 꿈같은 얘기일 수 있으나 그것을 앞장서서 실험하는 모임이 있다. 이름은 영어 약자 ‘KAJA’(카자)를 쓴다. 일본 이름은 따로 없고 굳이 번역하자면 ‘대안적 한-일 공부모임’이 된다. 우리말로 관심 있는 곳이면 가자는 뜻도 담겨 있다고 한다. 한류에 몰입된 일본 여성이 한 해에 대여점에서 빌려보는 비디오테이프나 디브이디(DVD)의 수는 수백 개에 이른다. 카자의 회원들은 ‘한류 중독증’에 빠졌다는 공통점 외에 플러스 알파를 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두 나라 사이에 얽힌 근현대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열정이 예사롭지 않다. 역사의 현장을 피부로 느끼기 위해 평화기행을 기획해서 광주 망월동, 평택 대추리, 화성 매향리, 지리산을 찾아갔다. 분단과 한민족의 이산을 체험하려고 개성, 금강산은 물론이고 중국 옌볜(연변)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정기적으로 세미나를 여는 이 모임의 존재를 처음 들었을 때 주객이 뒤바뀐 것 같아서 취재를 망설였다. 집에서 티브이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 처지여서 밑천이 달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9일 도쿄 신주쿠의 커피집에서 카자 집행부의 세 사람을 만나 모임의 ‘정체’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이들의 모임에서 <모래시계> <대장금> <화려한 휴가> <5공화국> <서울 1945> 등은 꼭 봐야 할 작품이었다. 기자가 게으름 탓으로 보지 못했던 <외박> 같은 다큐물 이름도 차례로 나왔다. 할인점 홈에버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여성들의 투쟁을 담은 <외박>을 보고 한국의 민중가요에 반해 배우러 다니는 회원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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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배우는 카자의 집행부. 오른쪽부터 쓰루 사와코 회장, 오에 다카코, 나카가와 미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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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김효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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