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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2.17 18:32 수정 : 2010.02.17 18:32

[매거진 esc] 곰사장의 망해도 어쩔 수 없다

자기 결혼식 때는 하객들에게 손수 파스타를 해 먹이겠다는 지인이 있다. 국수 언제 먹여 주느냐는 사람들의 얘기에 귀에 못이 박혀 어떤 식으로든 복수를 해야겠단다. 제대로 된 복수라면 아무것도 먹이지 않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 그래도 굳이 해 먹이겠다는 걸 보면 사실 가장 결혼을 하고 싶은 건 본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른. 어쩔 수 없는 결혼 적령기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서른이 된 나 역시도 결혼으로 인한 압박을 받고 있다. 이렇게 마음대로 살아서 어디 제 몸 하나 제대로 건사하겠는가 하는 생각을 듣고 있는 터라 진지하게 결혼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만큼, 내 문제는 아니다. 남의 결혼이 문제다. 작년까지만 해도 반년에 한 번꼴이었다. 올해는 매달 줄줄이 결혼이 잡혀 있다. 이건 뭐 내가 서른이 되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인가.

어쨌든 결혼식은 곤란하다. 일단 입고 갈 옷이 없다. 한 벌뿐인 정장은 그간의 체형 변화로 무용지물이 되었다. 인디하게, 자유롭게, 매일 잔치하는 기분으로, 술안주를 즐겼던 탓이다. 그리고 축의금. 꼴에 미디어에도 나오고 해서 주변에서는 돈 많이 버는 줄 안다. 하지만 인디 음악 업계라는 게 눈물 찔끔 나는 정도밖에 벌지 못하는 곳인데다, 말이 사장이지 알바에 지나지 않는 터, 얼마 벌지를 못한다. 이런 사정을 구구절절 축의금 봉투에다 적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 그리하여 수입에 알맞게 3만원, 이렇게 넣어두었다가는 신랑 신부와 사이 틀어지는 건 한순간이다. 차라리 내지 않는 게 나을까 싶기도 하다.

그 밖에도 이런저런 껄끄러운 것들이 있다. 부동산, 주식, 재테크에 관한 대화들. 멀다. 물론 내 얘기도 그쪽한텐 멀겠지. 돈 되는 얘기 하면 귀가 솔깃하긴 하나 그뿐. 음악 사업에 대해 잔뜩 궁금한 듯이 물어보지만 역시 그뿐이다. 오랜만에 만나서 느끼는 서먹서먹한 기분이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느낌으로 한층 더 깊어진다. 도무지 취직해서 연봉 받는 이들과의 대화라는 건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요컨대 ‘사회’라는 것과의 조우다. 정장을 빼입은 사회인들 사이에서 이물질과 같은 기분을 느끼기. 결혼식만이 아니다. 사회를 느끼기로는 명절이 제대로다. 직계 가족들이야 내 사는 방식을 인정한다고 해도, 어중간한 거리에서 압박해 오는 친척들은 동기 샐러리맨과 비할 바가 아닌 엄정한 사회다. 뜯어먹을 게 있는지 없는지 분간하지 못하고 세배해오는 조카들 역시 금전적 능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사회다. 이럴 때, 평소에는 적당히 피해서 사는 사회들이 사람 도리라는 명목 아래 피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접근해 온다. 이런 순간에는 숫자에 불과한 나이는 실질적인 것이 된다. 이제 관혼상제가 두려워지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제일 무서운 것은 돌잔치다. 우리 또래들이 애를 낳으며 사회를 지속시키고 있다니. 이게 바로 궁극적인 사회다.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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