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5.19 17:10
수정 : 2010.05.19 17:10
[매거진 esc] 곰사장의 망해도 어쩔 수 없다
만화 <슬램덩크>의 북산고교 농구부는 매년 지역대회 예선에서 탈락하는 별 볼 일 없는 팀. 하지만 암울한 상황에서도 주장 채치수, 중학 시절부터 꿔왔던 전국제패의 꿈을 한시도 포기한 적이 없이 굳건히 팀을 지켜왔으니, 그리하여 주위 사람들은 그를 ‘북산 농구부의 혼’이라 부른다.
북산에 채치수가 있다면 붕가붕가레코드에는 ‘술탄 오브 더 디스코’가 있다. 리더 ‘압둘라 나잠’, 하는 일 없이 구렁텅이에 빠져 있던 암울한 시절에 표연하게 나타나 자취방 스튜디오를 구현, 회사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그의 솔메이트이자 라이벌인 ‘무스타파 더거’는 탁월한 멜로디 감각과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로 붕가붕가레코드의 제작진을 이끌고 있다. ‘J.J 핫산’, 특유의 친화력과 겁 없는 구라빨로 관객들을 홀리고 다닌다. 그리고 ‘김덕호’. 수석 디자이너 김기조의 또다른 자아로서 일반인은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특이한 신체 동작으로 댄스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덕호 아버지’. 바로 나, 곰사장이다.
혹자는 ‘술탄’을 “붕가붕가레코드 관계자들의 철없는 장난질”이라며 별 의미 없는 것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물론 팀 이름에서 느껴지는 개그의 아우라도 그렇고 애초 이들이 지향했던 ‘인디 음악판 유일무이의 립싱크 댄스그룹’이라는 정체성도 그렇고, 사실 장난질인 것은 맞다. 애초에 자기네 회사 이름을 ‘붕가붕가’라고 지어놓고 낄낄대며 좋아라 했던 부류의 인간들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런 얘기 들을 때마다 사장으로서는 안쓰럽고 멤버로서는 약이 오른다. ‘술탄’의 역량이 이런 취급을 받을 만한 게 아닌데. 그저 그동안엔 다른 면모를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장기하와 얼굴들’로부터 ‘생각의 여름’에 이르는 다른 소속팀들의 ‘진지한’ 음반 작업을 돌보느라 정작 자기들 음악에 투입할 시간이 없었고, 공연 기획하다가 막히는 부분 있으면 “이 대목에선 술탄을 투입해서 망가지자”는 식으로 깜짝 게스트에 백댄서에 온갖 감초 구실을 도맡아 했다.
이렇게 오래 곁다리 생활을 하다 보니 심지어 멤버들이 자기네는 별 볼 일 없이 웃기는 놈들일 뿐이라며 스스로 폄하하고 마는 비극적인 일마저 벌어진 것이 문제였다. 이런 상황을 추슬러 새 음반을 하나 만들었다. 3년 만이다. 여느 때 같았다면 망해도 어쩔 수 없다며 별 기대를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하겠다. 이번 ‘술탄’의 음반은 3년 동안 우리가 노력하여 성장해 온 바가 그대로 녹아 있는 작업인 것이다. 붕가붕가레코드의 혼,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새 미니 앨범 <그루브 오피셜>, 바로 어제 나왔다.
붕가붕가레코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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