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2.24 20:48
수정 : 2010.02.2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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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어선 천룡호 선주겸 선장 김성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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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여행길에서 만난 11살 연하와 세번째 결혼에 성공한 어느 사내의 인생
제주 올레길을 걷는다. 서귀포 법환 포구, 이름 없는 주막에서 차돌 같은 사내와 조우했다. 김성일. 사내는 추자도에서 활어 배를 운영하는 선주다. 가족들이 사는 법환에 다니러 왔다가 사내도 올레길을 걷는 중이다. 쉰 살의 사내는 중학교 중퇴 후 35년 동안 배를 탔다. 사내의 아내는 공부만 했다. 11년 연하, 아내는 아름답고 초혼이지만 사내는 세 번째 결혼이다. 미녀와 야수. 사내가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10년 전. 제주시에서 차를 몰고 서귀포로 오는데 여자가 손을 들었다. 사내는 부산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여행 온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그날부터 일을 작파하고 가이드를 자처했다.
여자가 돌아간 뒤 사내는 이틀을 연습해서 휴대폰 문자 보내는 법을 터득했다. 만남 5년째 되는 해 비로소 사내는 고백했다. 그동안은 여자의 손목 한 번 잡지 않았다. 여행지에서의 사랑은 불가능이 없다.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기 때문이다. 여행자의 사랑은 즉흥적이고 충동적이지만 그것은 또한 사랑의 본성에 가장 충실한 사랑이기도 하다. 조건이 아닌 사람 자체에 대한 사랑. 사내의 순정이 사랑을 완성했지만 시작은 여행자와의 만남이었기에 가능했다.
사내는 15살 소년 선장 출신이다. 소년은 중학교 1학년 때 말썽을 일으켜 자퇴하고 1년 남짓 외삼촌의 배를 탔다. 자신감이 생기자 소년은 대뜸 “어멍, 배 하나 사줍서” 했고 어머니는 선뜻 배를 사주셨다. 그날부터 소년은 선장이 되어 고기잡이를 다녔다. 날마다 만선. 낮에는 바다에 나갔지만 밤이면 친구들이 그리웠다. 서귀포 시내로 놀러 다니다 패싸움에 휘말려 소년원엘 갔다. 3개월 만에 나온 소년은 다시 배를 탔다. 그러다 강정과 법환 마을 주민들 간의 집단싸움에 주동자로 몰려 도망자가 됐다. 강원도 삼척에서 멸치 배를 탔다. 어느 해 겨울 배가 뒤집혀 10시간 동안 바다에 빠져 사투를 벌이다 구조되기도 했다. 3년6개월을 숨어 살던 사내는 제주로 건너왔다가 붙잡혔다. 다행히 벌금으로 풀려났다. 사내뿐이랴, 누구에게나 인생은 모험의 연속이다.
사내는 법환에서 어로를 재개했다. 동중국해에서 옥돔과 갈치를 잡았다. 1980년대 후반 5억원을 모았다. 어느 해 바다에서 돌아오니 통장에는 한 푼도 없었다. 아내가 도박으로 다 탕진해 버린 것이다. 잠복 끝에 하우스를 찾아낸 사내는 후배 둘과 야구 방망이를 들고 도박판을 급습해 30여명을 경찰에 넘겼다. 두 번째는 둘 다 재혼. 서로 데려온 아이들 문제로 갈등이 심했다. 두 번이나 결혼에 실패한 사내는 동네 사람 보기가 부끄러웠다. 동중국해를 다니던 큰 배를 처분하고 8t짜리 활어 배를 사서 추자도로 은둔했다. 현재의 아내를 만난 것은 잠시 제주에 나왔을 때다. 지금까지도 사내는 추자도에서 활어잡이를 해오고 있다. 이제 사내는 어머니에게 효도하며 살 생각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한 달은 울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불효막심하게 살아온 탓이다. 사내뿐이랴, 자식은 태어나는 순간 죄인이다. 부모의 혈관에 빨대를 꽂고 사는 세상의 모든 자식은 불효자식이다.
강제윤 시인·<섬을 걷다> 저자
bogiln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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