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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거망마을 노인당 할머니들은 같이 밥을 먹는 식구다. 강제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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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통영 지도 거망마을 노인당에서 만난 ‘할아버지 한 개 없는’ 할머니들
통영 지도(紙島) 거망마을 노인당. 보일러가 고장 나 할머니들은 전기장판 위에 이불을 덮고 앉아 두런거린다. “뭘 볼끼 있다고 하필 이 칩운데 왔노.” 나룻배에서 만난 김영이(75) 할머니를 무작정 따라온 참이다. 할머니들이 김 할머니에게 농을 친다. “어디서 이런 이삔 아저씨를 사겨서 왔노. 재주도 좋다.” “사길라면 이런 사람 사겨야지.” 할머니들의 우스갯소리에 썰렁한 방 안 공기가 훈훈해진다.
할머니들이 점심상을 차리셨다. 통영에서 충무김밥을 먹고 왔던 터라 극구 사양해도 굳이 밥을 퍼 주신다. 할머니들은 큰 양푼 하나에 밥을 담아 함께 드신다. 고추장아찌가 감칠맛이 나 자꾸만 손이 간다. “고추가 너무 맛있네요.” 김영이 할머니가 바로 받아친다. “꼬추가 언제나 맛나고 개운커든.” 옆의 할머니는 농을 거는 김 할머니가 살짝 못마땅하시다. “고추니 붕알이니 엔간이 씨부리라.” 할머니들 농담이 걸쭉하다.
할아버지들은 일찍들 저승길 떠나시고 할머니들만 남았다. “여 있는 사람은 할아버지 한 개도 없다. 전수 홀어멈들이다.” 김영이 할머니는 노인당의 분위기 메이커다. 고성에서 스무 살에 지도로 시집을 와 55년을 살았다. 옆의 할머니 말씀. “그때는 스무 살이면 노처녀지. 다들 열대여섯에 시집갔으니. 내는 열아홉에 오니까 환갑 먹은 처녀 왔다고 난리더구마. 어찌 그 시절에 스무 살 묵도록 있었노.” 김 할머니는 젊어서는 고향에도 더러 다니기도 했지만 나이 들고서는 통 가본 적이 없다. “부친, 모친 가시고 나니 갈 일이 있나.” 이제는 스스로 고향이 되셨다. 자신의 고향은 잊어버리고 타향 사는 자식들의 고향이 되신 어머니.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식들의 고향이다.
할머니의 남편은 군대에서 구타를 당해 15년이나 앓다가 서른일곱에 이승을 하직했다. 남겨진 아내는 서른셋 청상. “아들 두 개, 딸 다섯 개 키운다고 쌔가 다 빠져 삐리고” 어느새 노인이 됐다. 농토가 없어 내내 “넘의 집 일만 해주고” 살았다. “밭도 매주고, 오줌도 져주고” 곡식을 얻어다 연명했다. 밤새워 베틀을 밟아 베도 짜며 자식들을 키웠다. 할머니는 그 시절 부르던 노래 한 자락을 뽑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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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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