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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리밭 사이로 난 가파도 올레길은 과거로의 시간여행 길이다. 강제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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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10년 만에 원수집안과 사랑 허락받은 이장님
“확실히 인간은 한여름의 반딧불처럼 덧없는 존재이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 넓고 아득한 그리고 광대한 풍경 속에서 작지만 소중한 불빛을 밝히는 존재이기도 하다.”(일본 작가 후지와라 신야)가파도 올레길을 걷는다. 18만평의 보리밭으로 유명한 가파도는 이 나라 유인도 중 가장 낮은 섬이다. 섬의 가장 높은 곳이 20.5m. 제주에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과 가장 낮은 섬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 깊다. 그동안 제주를 찾는 사람들은 가장 높은 곳을 좇아 다들 한라산에 오르면서도 가장 낮은 섬 가파도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우리는 너무도 낮은 것을 천시하는 습성이 있다. 바닥이야말로 지친 우리를 받아주고 눕혀주는 것을. 실상 산에 오르기보다 중요한 것은 산에서 내려가는 일이다. 낮은 곳으로 잘 내려가는 것이야말로 등산의 완성이다. 올레길 개장으로 가파도는 비로소 세상에 가장 낮은 것의 가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파도 김동옥(56) 이장님에게는 2년 아래의 아름다운 여동생이 있었다. 그녀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서울로 유학을 떠났다. 1학년 여름방학 때 동생은 고향 가파도로 돌아왔다. 총명한 그녀는 물질을 좋아했다. 어려서부터 놀이터 삼아 바닷속에서 살았으니 물은 그녀 모성의 고향이었다. 그녀는 방학 내내 해녀 친구를 따라다니며 물질을 했고 전복을 잘도 따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물속으로 들어간 뒤 영영 나오지 않았다. 수중에서 참았던 숨을 놓고 만 것이다. 물속에서 내내 살고 싶었던 것일까. 바다를 떠나기 싫었던 것일까. 깜짝 놀란 해녀 친구는 울부짖으며 해녀대장이던 그녀의 엄마에게 매달리고 고모에게도 매달리며 “내 친구가 바다에 누워 있다. 건져 달라” 했지만 다들 외면했다. 해녀 사회에는 금기가 있었다. 바다에서 빠져 죽은 사람을 건져 주면 죽은 사람에게 남은 숨을 다 줘버리기 때문에 다시는 해녀 노릇을 할 수 없다는 믿음이다. 그것은 아마도 한 사람 구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목숨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해녀들 스스로 만들어둔 금기이자 고육책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이장님 집안은 해녀 친구네 집안과 원수가 됐다. 그사이 이장님은 애절하게 울어대는 동생의 친구를 달래고 위로하면서 자신도 위로받았고 마침내 둘은 사랑에 빠져버렸다. 하지만 두 집안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원수지간. 어느 쪽도 둘의 결혼을 허락하려 들지 않았다. 효자였던 이장님은 아버지의 뜻을 거역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이장님은 유랑의 길을 택했다. 가파도를 떠나 뭍으로 가서 몇 달씩 떠돌다 돌아와 사는 시간이 시작됐다. 대정읍사무소 공무원 생활도 접고 떠돌이가 됐다. 하지만 결혼 허락을 얻으려는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다. 그렇게 유랑과 귀향의 날들이 수도 없이 반복됐다. 어느 해 유랑에서 돌아온 날 이장님의 아버지가 드디어 손을 들었다. “귀신이 세 개 들어도 남녀간의 사랑은 못 말린다는데 내가 졌어.” 10년 만에 얻은 사랑의 승리. 이장님은 그 자리에서 만세를 불렀다. 원수가 된 집안도 화해시키는, 사랑은 힘이 세다.
강제윤 시인·<섬을 걷다> 저자 bogiln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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