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0.04.30 08:34 수정 : 2010.04.30 08:34

무명대에서는 망망한 태평양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강제윤 제공

[매거진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욕지도 낭떠러지에서 수행공간 운영하는 무무거사

사월 보름밤이었다. 통영시 욕지도 혼곡 무명대(無明對). 혼미한 정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깊고 푸른 밤바다를 유영하던 나그네는 느닷없는 공격에 잠이 깼다. 눈두덩을 한대 호되게 얻어맞았다. 누구였을까, 미몽에 빠진 나그네에게 일격을 가한 것은. 얼얼한 눈자위를 어루만지며 방 안을 둘러봤으나 침략자는 보이지 않았다. 꿈이었나. 분명코 꿈은 아니었다. 문득 부설방(浮雪房) 창밖을 보니 무명대 앞바다가 온통 환한 달빛에 물들어 있다. 알겠구나. 내 눈두덩을 후려친 것의 정체를. 나그네는 달빛에게 얻어맞고 잠이 깬 것이다. 수면에 반사된 달빛이 유리창으로 들어와 나그네를 공격한 것이다. 달빛에 맞아 눈이 시퍼렇게 멍들다니! 달 방망이 한 방에 나그네는 잠시나마 존재의 무명을 밝힌 것일까.

무명대는 비승비속의 공간이다. 깎아지른 낭떠러지에 위태롭게 자리한 수행공간. 절도, 절이 아닌 것도 아닌 도량. 법당과 요사는 낡을 대로 낡은 토담집. 태풍이 불 때마다 지붕은 날아갔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몸을 숨겼다가 바람이 자면 돌아와 다시 지붕을 얹었다. 절벽 아래는 망망한 태평양 푸른 바다가 찌든 눈을 씻어준다. 무명대에는 ‘3보’(세 보물)가 있다. 1보는 세상에서 가장 전망 좋은 화장실. 건물 바로 밑이 절벽이라 창문이 따로 없다. 태평양 바다를 바라보면서 세상 모든 근심을 풀어낼 수 있는 해우소다. 2보는 범종. 녹슬고 칠이 벗겨진 범종은 가스통을 뒤집어서 달아맨 것이지만 울림은 맑고 크다. 3보는 작은 법당. 낡은 옛집의 법당 안에는 그 흔한 불상 하나 없이 청량하다. 거기서 예불을 드리고, 참선과 발우공양을 한다.

선농일여. 무명대는 무무거사와 비구니에서 환속한 그의 아내가 농사를 지어 자급한다. 무명대는 도로가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절벽 위 비탈진 땅에 온전히 몸을 숨기고 있다. 15년 전, 폐촌이 된 골짜기에 숨어들어 다시 땅과 집과 사람들을 살린 이가 무무거사다. 그는 1980년대 대학을 다니며 공장지대에서 야학을 했다. 산을 좋아하던 그는 등산용 버너 폭발로 중화상을 입고 2년 동안 병상에 누웠다가 살아났다. 그 뒤 민중불교 운동을 하던 스님과 산천을 떠돌다 욕지도로 들어왔고 무명대를 세웠다. 어느 해 여름 무무는 스님을 비롯한 도반들과 함께 태풍 구경을 나갔다가 파도에 휩쓸렸다. 다섯 사람 중 그 혼자만 헤엄쳐 살아나왔다. 죽음 앞에서 두 번째 생환. 홀로 남은 그는 삶의 끝자락에서 절망하던 수많은 이들을 불러 함께 농사를 짓고 참선하며 삶의 의욕을 되찾아줬다. 어느 절보다 먼저 템플 스테이를 해온 셈이다. 15년 동안 그가 공부시켜 스님으로 만든 이도 50명이 넘는다. 요즘은 주로 아이들의 수행 공간이다. 발우공양으로 밥알 하나의 소중함을 깨닫고 참선을 하며 스스로를 다스리는 법을 배운다.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사람 공부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 무명대는 큼직한 법당은 물론 그 흔한 불상 하나 없는 작고 가난한 암자지만 절보다 더 절다운 수행도량이다.

강제윤 시인·<섬을 걷다> 저자 bogilnara@hanmail.net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