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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5.12 20:07 수정 : 2010.05.12 21:00

김현기 만신의 굿당은 소박하지만 신령함으로 가득하다. 강제윤 제공

[매거진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신내림으로 무당 된 문갑도의 70대 할아버지

인천에서 덕적도, 덕적도에서 또 배를 옮겨 타고 문갑도까지 건너왔다. 서해의 섬이지만 문갑도에는 갯벌이 거의 없다. 갯것이 적으니 섬살이가 신산하다. 문갑도는 한때 새우 어장으로 유명했지만 이제 새우도 잡히지 않는다. 젊은 사람은 모두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섬. 마을 안길로 들어서니 섬은 농촌이다.

병풍처럼 둘러선 산자락 아래 밭에서 노인 한 분을 만났다. 칠순의 노인이 허리가 꼿꼿하고 활력이 넘친다. 범상치 않은 풍모. 노인은 귀걸이를 했다. “멋쟁이시네요.” “이쁘라고 뚫은 거 아니야. 골이 하도 아파서 뚫었지. 펜잘을 삼시 세 때 먹어댔는데 귀 뚫고는 안 아파요.” 귀걸이가 썩 잘 어울린다. “창피할 때는 창피해도 내가 안 아프면 그만이지.” 카메라를 들자 노인이 멋지게 폼을 잡는다. 김현기(71살) 만신. 문갑도 무교의 마지막 사제다.

노인은 어려서 절에 맡겨져 6년을 동자승으로 살다가 환속했다. 그 뒤 교회를 다녔는데 어느 날부터 이유 없이 아프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아픈 거여. 꿈에 꼭 옛날 할아버지가 보이고.” 꿈만이 아니라 낮에도 눈을 살짝 감기만 하면 갓 쓴 할아버지가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시름시름 앓았다. 지독한 무병. 사람들이 다들 곧 죽는다고 쑥덕거렸다. 덕적도의 무당집을 찾았다. 무당은 옛날 조상님이 찾아오는 거라 했다. 믿기지 않아서 인천으로 갔다. 인천의 무당집 열 곳을 돌아다녀도 똑같은 소리. 인천에서 제일 큰 만신을 만났더니 신내림 굿을 받으라고 했다. 덕적도 서포리의 무당 할머니를 모셔다 굿을 했다. 굿이 끝나자 거짓말처럼 병이 나았다. 그 뒤 내내 무당으로 살았다. 지금도 굿을 할 때면 마을 경로당 앞에서 작두를 탄다. 수십년 작두를 탔지만 “나도 사람이니까 그냥 있을 때는 작두날을 보면 무섭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해. 하지만 신명이 오르면 아무렇지도 않아.”

섬 주민 40명에 교회는 세 개. 노인은 교인들과도 친하다. “내, 믿음 가지고 서로 다투지 말자 그러지.” 처음에는 무당이 된 것을 한탄했지만 이제는 복으로 여긴다. “천지신명이 나를 점지했잖아. 모래알같이 많은 사람 중에 나를 찍은 것만도 고마운 일이지.”

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노인의 신전은 당산 아래 있다. “나는 쌈을 해도 절대 악담을 안 해. 내가 악담을 하면 그 사람한테 안 좋거든. 내 몸 안에 1만 신명을 모셨으니 내가 한마디 하는 게 1만마디 하는 거야. 그러니 안 좋지. 아무튼 누가 됐든 악담하면 못써. 악담하면 자기부터 악담을 맞아.” 나그네는 노인이 모시는 신들에게 절을 올린다. 사찰에 가면 부처님께 삼배를 드리고 성당에 들면 성모님께 기도를 바치듯이. 나그네는 어떤 신도 믿지 않지만 누구의 신도 배척할 뜻이 없다.

노인은 떠나는 나그네를 배웅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맺혔던 응어리가 터지는 소리. “저 신령님들 마귀가 아녀. 다들 우리 조상님들이지. 마귀라고 하는 소리 들으면 답답스러.”

강제윤 시인·<섬을 걷다> 저자 bogiln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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