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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5.26 18:39 수정 : 2010.05.26 18:39

사량도는 웃섬, 아랫섬 두 섬이 하나의 이름으로 불린다. 강제윤 제공

[매거진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사량도 옥녀봉에 얽힌 비극적인 사연

통영시 사량도 유스호스텔 뒷길로 옥녀봉에 오른다. 등산로 길바닥이 닳을 대로 닳아 윤이 반질반질하다. 얼마나 많은 등산객들이 다녀간 것인지 짐작하고도 남겠다. 왜 아니겠는가. 뭍에서 불과 30분 거리의 섬, 한려수도의 수려한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산길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분재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캐가고, 난과 야생화를 뽑아가느라 산을 훼손시키지만 않는다면 산마루가 닳고 등산화 바닥이 닳도록 다닌들,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다닌들 이 섬의 산이 쉽게 없어지거나 바닷속으로 꺼져버리기야 하겠는가. 등산객들 중 일부 철부지들이 산보다 산에서 얻어갈 것을 찾아 산을 헤집고 다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그저 산을 호흡하고 느끼다 갈 뿐이다.

육지의 산이나 섬의 산이나 산을 훼손하는 범인은 등산객들이 아니다. 돈에 눈먼 토목업자들, 지방세수 증대를 핑계로 골재 채취와 석산 개발 따위 허가를 쉽게 내주는 자치단체들이야말로 파괴의 주범이고 공범들이다. 그들이 산 하나 잘라내고 섬 하나 들어내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렇게 사라진 산과 섬들이 부지기수다. 등산객 수십만명이 천년 걸려도 못할 일을 그들은 단 며칠 만에 해치운다.

그러므로 등산객들이 참으로 산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산을 즐기기만 할 것이 아니라 토목업자들에 의해 파괴되는 산을 지키는 데도 앞장서야 마땅하다. 그래야 그들에게 비로소 산에 올라 머물 수 있는 영주권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불행하게도 골프장이나 골재 채취, 도로 건설 등으로 파괴되는 산을 지키기 위해 산악인들이 앞장섰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의무를 행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누려온 것이다.

오늘 나그네는 옥녀봉에 올라 사량도 앞바다를 본다. 생래적인 섬의 슬픔을 엿본다. 옛날 사량도에 옥녀라는 처녀가 아비와 둘이 살고 있었다. 어미는 옥녀를 낳은 지 얼마 안 돼서 죽었다. 옥녀는 자라면서 점차 죽은 어미를 쏙 빼닮아갔다. 어느 순간 옥녀에게서 여자를 느낀 아비는 욕정을 참지 못하고 딸인 옥녀를 겁탈하려 들었다. 옥녀는 한사코 도망쳤지만 아비는 점점 더 무섭게 변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옥녀는 아비에게 말했다.

“아버지가 하려는 것은 차마 사람으로서 할 도리가 아닙니다. 짐승이라야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먼저 산에 올라가 있겠습니다. 아버지도 오늘 밤 자시까지 산으로 올라오시면서 소 울음소리를 내십시오. 그러면 제 몸을 허락하겠습니다.”

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옥녀는 슬픈 마음으로 산에 올라가 아비가 잘못을 깨닫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약속한 시간이 되자 산 아래서 “음머 음머~” 하는 소 울음소리가 들렸다. 짐승으로 돌변한 아비의 모습에 절망한 옥녀는 바위에서 풀쩍 뛰어내렸다. 옥녀가 죽음으로 치욕스런 삶에 저항했던 바위가 지금의 옥녀봉이라 전한다. 이 산하에 옥녀처럼 살다 간 처녀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남매 사이의 비극적인 연애를 전해주는 소매물도의 남매바위나 백아도의 선단여 전설은 애틋함이라도 있으나, 옥녀의 전설은 그저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울 뿐이다. 대체 저 ‘수컷’인 아비들을 어찌할 것인가.

강제윤 시인·<섬을 걷다> 저자 bogiln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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