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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6.09 20:52 수정 : 2010.06.09 20:52

영원히 운항을 멈추고 정박중인 관리도 앞바다의 폐선. 강제윤 제공

[매거진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군산행 유람선에서 벌어진 중년들의 짙은 춤판

군산 관리도 선착장에 정박중인 어선들 중 한 척의 이름은 그랑블루호다. 배의 주인이 영화 그랑블루에 꽂혔던 것일까. 문득 그 영화 속 대사 하나가 떠오른다. “열일곱 살에 나는 그녀를 위해 죽을 수도 있었어. 하지만 스무 살이 되자 이름도 기억나지 않더군.” 젊은 날의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관리도 마을 뒤 민들레꽃 무더기로 핀 풀밭에선 염소와 닭들이 어울려 풀을 뜯는다. 인기척에 놀란 새끼 염소 하나 겁먹은 얼굴로 어미 곁으로 도망친다. 겁 없는 닭들은 나그네의 발밑까지 몰려와 풀을 먹는다. 쑥을 뜯고 마른 풀씨를 쪼아댄다. 나그네는 짐을 풀고 소나무 그늘 아래 기대앉는다. 닭들을 따라다니던 어린 염소들도 이내 의심을 풀고 다시 풀을 뜯는다. 용감한 중닭 한 마리는 나그네의 무릎까지 콕콕 찍어본다. 호기심 넘치는 녀석이다.

닭들도 다 성격이 다르다. 겁 많은 놈, 수줍음 타는 놈, 장난기 가득한 놈. 저 어린 닭들은 또 얼마나 귀여운가. 닭은 그저 찜닭이나 프라이드 치킨을 열매 맺는 고기 나무가 아니다. 그 또한 한번 사라지면 돌아오지 못할 목숨. 먹고 먹혀야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생애의 들판.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포식자, 사람 또한 땅에 묻히면 온갖 벌레와 미생물의 먹이가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밥이 되는 생명계의 실상. 누가 이 엄혹한 생명의 법칙을 피해 갈 수 있으랴. 닭이나 염소나 사람이나 모두가 같은 생명의 수레바퀴를 따라 굴러간다. 어느 하나 함부로 해도 좋은 목숨이란 없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너의 살을 먹고 나의 살을 바친다. 그것이 생명에 대한 예의다.

관리도에서 어선을 얻어 타고 선유도로 건너왔다. 문득 호기심이 발동하여 정기여객선 대신 군산행 유람선을 얻어 탄다. 고군산 섬들을 유람하고 나가는 관광객들. 다들 낮술에 거나하게 취했다. 거반이 중·노년들이다. 유람선 선실은 노래방.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는 마이크 소리가 귀를 찢는다. 중년의 남녀들이 서로 끌어안고 춤을 춘다. 유람선 선장은 선상 나이트클럽의 디제이다.

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아줌마들, 춤 좀 춰봐. 노래 틀어 줄랑께.” 선장의 멘트가 끈적인다.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수운저엉.” 노년층이 많은 선실 앞칸이 단정한 노래방 분위기인 데 반해 중년들이 차지한 선실 뒤칸은 가는 세월의 끝자락을 붙잡기 위한 몸부림으로 뜨겁다. 10여명의 남녀들이 서로 끌어안고 뒤엉켜 분위기가 짙어진다. 선상 카바레. 선유도에서 군산까지 한 시간을 내내 쉬지 않고 춤추고 술 마시고 노래하는 사람들.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왔다고 말하지만 믿을 수 없다. 암만해도 ‘묻지마 관광’ 냄새가 난다. 빨간 바지 여자는 술병을 들고 키 큰 선글라스 남자에게 술을 권한다. 남자는 여자를 뿌리친다. 빨간 바지를 뒤따르던 대머리 남자는 땀을 닦으라며 손수건을 건네지만 여자는 매정하게 뿌리친다. 그사이 선글라스 남자는 주황색 모자를 쓴 여자 앞으로 다가가 몸을 흔든다. 물고 물리고 엇갈리고 빗나가는 구애의 몸짓들. 봄이 어디 오는 봄만 봄이겠느냐. 가는 봄도 봄이 아니겠느냐.

강제윤 시인, <올레, 사랑을 만나다> 저자 bogiln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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