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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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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재원도에는 주민보다 선원들이 많다. 어장 배를 부리는 주민들은 목포의 소개소를 통해 선원들을 데려온다. 오늘은 조업이 없는 날. 선원들이 축구시합중인 폐교 운동장을 기웃거리는데 한 사람이 말을 건다. 참 선한 인상이다. 충남 금산이 고향인 사내는 아버지 돌아가시고 아홉 살 때 가출해서 평생을 떠돌며 살았다. 아홉 살 소년은 할아버지 집이 답답해 무작정 집을 나와 호남선 열차를 탔다. 처음 들어가 일을 한 집이 목포의 남창상회라는 가게. 그 무렵 남창상회와 거래를 하던 사람 하나가 양아들 삼는다기에 그를 따라 완도군 소안도로 갔다. 하지만 소년은 9남매가 사는 집의 머슴 노릇을 해야 했다. 아이가 아홉이나 되는 집에 양아들이 필요할 리 만무했다. 양아버지란 사람은 처음부터 머슴살이를 시킬 목적으로 소년을 데려간 것이었다. “지게 작대기로 맞기도 많이 맞았지요.”몇 번을 도망치다 선창머리에서 붙잡혀 7년 동안이나 머슴으로 살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피눈물 난다”면서도 사내는 이제 원망이 다 풀어졌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주인집 자식들과도 화해를 했다. 사내가 재원도를 처음 찾은 것은 20대 초반. 그 후 홍도·흑산도·추자도·비금도·하의도 등 각지를 떠돌며 안 타본 배가 없다. 아홉살부터 배를 탔으니 40년간 배를 탄, 천생 뱃사람이다. 몇 해 전 재원도로 다시 왔다. 한달 15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힘도 들지만 재미도 있어라. 서민들은 배 타기가 젤로 좋아. 계약해 불면 그날로 술, 담배에 용돈까지 주제. 없는 사람은 배 타게 돼 있어라.”
총각 시절 사내는 흑산도 파시에 갔다가 술집 색시와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 전주 아가씨였는데 배에 올라와 밥이며 빨래까지 다 해주곤 했다. 한달간 밤낮으로 붙어서 살았다. 색시는 노부모의 병원비 때문에 술집을 다니다 흑산도까지 팔려왔다. 빚 칠백만원을 갚아줬다. 1980년대 중반이었으니 아주 큰돈이었다. 색시는 흑산도를 빠져나간 뒤에도 자주 연락을 해왔다. 빚을 갚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했다. 사내는 그녀에게 돈은 안 갚아도 좋으니 다시는 술집 나가지 말고 노부모님 모시고 잘 살라고 당부했다. 그 뒤 여자의 소식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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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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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올레 사랑을 만나다〉 저자 bogiln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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