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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1.20 16:32 수정 : 2011.01.20 16:32

보령 고대도 도리사를 지키는 팔순 노승. 강제윤 제공

[매거진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보령시 고대도. 고갯마루에 가건물로 지은 절이 하나 있다. 도리사. 빈 절은 아닌 듯싶은데 인적이 묘연하다. 스님은 어디 가셨나. 뭍으로 출타라도 하셨나. 불러도 대답이 없다. 길 건너 오두막에 계시는가. 다가가 문을 두드리자 노승이 문을 열며 반긴다. 누더기를 걸친 노승은 전기장판 위에 이불을 덮고 앉았다. 팔순의 노승은 세상을 떠돌다 10년 전에 이 섬으로 흘러들었다. 세계를 두 바퀴나 돌면서 “나를 찾아 다녔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이 섬에 들어온 것도 혹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노승은 이제 더는 나를 찾지 않게 된 것일까. “배고프면 먹고, 가는 디나 신경써야지” 말씀만 되뇐다. 요새는 도통 도통할 생각도 않고 그저 염불만 외고 산다. 종일토록 불경만 읽는다. 섬에 들어와 10년간 법화경을 읽었지만 그 또한 꿈속이다. 법화경 속에서도 끝내 나를 찾지 못했다. 노승은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다. 태어나자 대전의 보문사에 버려졌고 자연스레 스님이 되어 80년을 불문에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한바탕 꿈이었다. 80년을 수도하고 경전을 봤으나 달라진 것은 없다. “어제 밥 먹고 똥 쌌는데 오늘도 밥 먹으면 똥 싼다.” 그것이 깨달음의 전부다.

노승은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석주 스님을 20년간 모셨다. 온양의 보문사도 지었다. “다 짓고 나니 허망해.” 10년간 세계를 떠돌았다. 법사 대학을 세우고 또 10년을 살았다. 그래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 “알고 보니 전부 밥 먹고 똥 싸는 것”뿐이었다. “어디서 부처를 찾을 것인가. 알고 보니 자신이 부처인 것을.” 하지만 “사람들은 전부 다, 만들어놓은 불상에 매달리고 중들은 그 신도들한테 의지해서 살아. 그건 거꾸로 된 불교지.” 노승의 일갈이 추상같다. “내 속에 불성이 있으니 나를 찾아, 내 안의 부처를 찾아야지. 사람들은 그저 너를 찾으려고만 해. 그러니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노예가 되는 것이지. 진짜 나는 잊어버리고 오로지 너만 찾아다니니까.” 그렇다면 세계를 헤매고 다니는 것이 무슨 소용이랴. 그래서 다 버리고 이 작은 섬의 산중으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노승도 아직 참된 나를 찾지 못했다. “해가 쨍그랑 떴는디 꿈꾸는 것 같아.”

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노승은 오늘도 오직 한 생각, 나를 찾을 생각뿐이지만 끝내는 못 찾아도 좋다. “갈 데는 맡아 놨으니까.” 갈 곳이 어딜까. 도리천. 극락정토다. 노승은 그 믿음만은 철석같다. “도리천이 대체 어디 있단 말씀입니까?” “어디 있기는 내 마음속에 있지. 마음이 아니면 그걸 어찌 생각하겠소. 극락도, 지옥도, 부처도 오직 마음속에 있지.” 노승의 말씀이 머리를 친다. 노승은 이미 극락에 도달한 것이다. 내세나 다음 생 따위는 없다. 삶이, 마음이 극락이고 지옥이다. 지금 여기의 삶이 소중한 건 그 때문이다.

시인·<자발적 가난의 행복> 저자 bogiln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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