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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2.10 11:45 수정 : 2011.02.10 11:45

흑산도 앞바다의 어류 양식장.

[매거진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한 고개를 넘으면 또 한 고개, 흑산도 길은 굽이굽이 첩첩 산길이다. 몇개의 고개를 넘어 창촌마을의 폐가를 기웃거리는데 지나가던 노인 한 분이 말씀을 걸어온다. “옛날에는 여러 집들이 살았는데 다들 나가빌고 쪼금만 살고 있소.”

마을은 주로 멸치잡이에 생업을 의존한다. 마른 멸치와 멸치액젓. 젊은 사람이 없으니 멸치 철이면 육지의 직업소개소에서 사람을 사다가 어장을 한다. “옛날엔 일년 내내 멸치잡이 했는데 이제는 잘 안 잡혀요. 수온이 높아져서 그런지 해파리 새끼가 많이 들어가서 힘들어.” 흑산의 홍어가 유명하지만 예리를 제외한 흑산도 대부분의 마을은 홍어잡이와 무관하다. “지금은 배가 30t 이상은 돼야 홍에 잡이를 할 수 있어. 돈이 몇 억 들어요.” 홍어가 귀해지니 이제 홍어잡이는 큰 배를 살 수 있는 일부 선주들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도 노인은 홍어 이야기가 나오자 흥이 오른다. 홍어가 흔했던 옛날에는 노인도 작은 목선으로 홍어를 잡았다. 그때는 홍어가 지금보다 몇 곱절은 컸다. “홍어는 잡으면 배에서 바로 숙성을 시켰어요. 육지로 나가면 구더기가 날 정도로 썩었었지.” 하지만 흑산도 사람들은 삭힌 것을 즐기지 않는다. “우리는 삭혀서는 잘 안 먹어요. 바로 싱싱한 놈, 그렇게 먹어야 더 맛있고.” 삭힌 홍어는 먼바다 뱃길이 만들어낸 문화다. 흑산 홍어배의 종점인 나주 영산포가 삭힌 홍어의 본고장인 것은 그 때문이다. 홍어는 흑산 사람들의 약이기도 했다. 식약불이. “옛 어른들은 홍어가 소화제라 했어요. 껍데기에 낀 미끌미끌한 꼽을 삭힌 뒤 먹으면 소화도 잘되고 가래도 잘 삭는다 했지.”

팔순의 할머니 한 분은 지팡이에 의지해 마실을 나왔다. “빵 하나 사 묵을라고 기다렸는데 안 오네.” 노인은 농협 차를 기다리신다. 농협 하나로마트의 식품 차량이 일주일에 한 번씩 마을들을 순회하며 이동 판매를 한다. 거동이 수월치 않은 노인들을 위해서다. 200여명이 살던 마을에 지금은 18명의 주민들만 남았다. 마을에는 구멍가게도 하나 없으니 노인은 1000원짜리 빵 한 개 사 먹기 위해 일주일을 기다린다.


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하루를 꼬박 걸어서 흑산 섬을 일주했다. 오르막과 내리막 길을 수십번은 족히 오르락내리락했다. 섬에서 이토록 많은 고갯길을 걸어보기는 처음이다. 이 섬은 마치 생의 압축판 같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걸은 끝에 도착한 곳은 처음 그 자리, 흑산항이다. 그 자리는 또한 섬에서 가장 낮은 자리다. 사람이 높은 곳에 있다가 아무리 낮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해도 처음 그곳이 아닌가. 높은 데서 내려오는 것을 사람은 잃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잃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흑산, 참으로 위로가 많은 섬이다.

강제윤 시인·<자발적 가난의 행복> 저자 bogiln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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