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른땅을 곡괭이로 파가며 약초 캐는 할머니. 삶이 어찌 이다지도 모진가! 강제윤 제공
|
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거금도는 고흥의 섬이다. 녹동항에서 배가 수시로 다닌다. 하지만 이 섬도 머잖아 뭍으로 편입될 예정이다. 소록도와 녹동 간에 연륙교가 생겼고 거금도는 소록도와 연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거금도 청석 부근, 비탈 밭에 백발의 할머니 한 분 작은 곡괭이로 땅을 파 약초를 캐는 중이다. “혼자 오셨소?” “예.” “혼자 오셨구만이라우. 버스 타고 오셨구만이라우. 동무랑 같이 오지 그랬소. 감나무에 감이라도 있으면 자시라 할 텐데 떨어지고 없소.” 할머니는 초면의 나그네에게 뭐라도 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텅 빈 감나무를 본다. “어치케 비가 안 오고 깡깡한지.” 할머니는 건너 섬 시산도가 고향이다. “내 안투 고향은 시산이요. 거이가 친정부락이요. 안 올 디를 와갖고 험한 시상 다 넘기고, 서른 시살 막둥이도 죽어 빌고, 팔십서이나 됐는디.” “힘드시겠어요. 할머니.” “시월 보내고 살지 어차겄소.” 큰아들은 50이 넘었는데도 어렵게 산다. “답답하요. 큰놈은 장사하지 마라 해도 장사해 갖고 손해 보고 없이 사요.” 83살 어미는 여전히 큰아들을 돕는다. 착하기만 하던 작은아들은 가정을 꾸려 성실하게 살았다. 그런데 느닷없는 사고를 당했다. “막둥이는 마흔네살에 낳는디, 손주 모양 낳는디, 사람 노릇 할까 했는디 가버렸소.” 포클레인 운전을 하던 막내아들은 어느 날 점심 먹고 쉬던 중 흙이 무너져 깔려 죽었다. 청상이 된 며느리가 손주를 키우고 있으니 그 또한 못 본 체할 수가 없다. 생활보호대상자인 할머니는 자신은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에 살면서도 생계지원비와 노령연금, 약초 판 돈을 안 쓰고 모은다. 지난 설에는 200만원이 모여 며느리와 큰아들에게 각기 100만원씩 나눠줬다. “돈 주는 면 직원이 내가 불쌍해 죽겄다고 하요.” 추석 때는 50만원씩밖에 못 준 것이 아쉽다. 딸은 셋인데 하나는 의문의 사고로 죽었지만 범인은 잡지 못했다. 시집온 뒤부터 영감은 내내 속만 썩이다 환갑에 이승을 떴다. “쌀 갖고 다니면서 술이나 묵고. 밭곡식 갖고 다님서 술 묵고. 일찍이 잘 갔지. 오래 사는 게 큰일이오. 그게 고생이지라우. 막둥이 그것만 안 죽었어도 숨 쉬고 묵을 것 묵고 살 텐디.” 할머니는 자신의 불행이 남 탓이 아니라 자기 탓이라 여긴다.
|
시인·<자발적 가난의 행복> 저자 bogilnara@hanmail.net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