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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3.10 14:34 수정 : 2011.03.10 14:34

한 가지 일을 오래 연마하면 누구나 도인이다. 50년 톱날을 갈아온 노인. 강제윤 제공

[매거진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폭풍주의보가 내렸다. 통영 바다의 뱃길은 끊겼다. 나그네는 섬으로 가려던 발길을 돌려 중앙 활어시장으로 향한다. 시장 바로 위는 벽화마을 동피랑이다. 팔팔 뛰는 활어와 조개들로 통영의 봄은 식도락 천국이다. 통영의 해산물은 어느 항구보다 싱싱하고 풍성하지만 값은 무척 싸다. 요즈음은 도다리와 굴과 멍게·우럭·조개가 제철이다. 일반 멍게는 삼사월이 제철이고 돌멍게는 칠팔월이 제철이다. 감성돔은 겨울이, 참돔은 여름이 제철이다. 과일이 그렇듯 해산물도 제철이라야 맛이 깊고 달다. 여름 방어는 개도 안 먹지만 겨울 방어는 참치보다 맛난 것도 그 때문이다.

활어 골목을 나서면 관람용 거북선이 있는 강구안이다. 거기 문득 나그네의 발길을 붙드는 풍경이 있다. 한산대첩 홍보관 옆에서 노인은 톱을 간다. 40년을 이 강구안에서만 톱을 갈았다. 노인은 집에서 손수 만들어 온 톱을 팔고, 날이 무딘 톱날을 갈아준다. 톱은 관광객들에게도 팔리지만 대부분 이 지방 사람들이 사간다. 노인은 해마다 4월부터 7월까지 톱을 만든다. 이때는 해가 길고 톱을 사러 오는 손님도 적기 때문에 판매보다는 톱을 만드는 데 주력한다. 톱은 주로 가을이나 겨울에 많이 팔린다. 수분이 빠져 나무 베기에 적당한 계절인 까닭이다. 노인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데도 장갑도 끼지 않은 채 톱날을 간다. 한겨울에도 맨손이다. 장갑을 끼면 미끄러워 톱을 갈기가 불편하다. 그래서 맨손으로 톱을 갈기 시작한 것이 습관으로 굳어져 이제는 시린 줄도 모른다. 노인은 ‘조실부모’한 뒤 혼자서 어린 동생들 4형제를 돌봐야 했다. 평생 먹고살 직업을 찾다가 시장통에서 톱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그 당시에는 톱이 생필품이라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처음 6~7년은 톱을 만들어서 등에 지고 촌으로 팔러 다녔다. 그러나 어느 정도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자 이 자리에 붙박이로 눌러앉았다.


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한가지 기술만 50년 가까이 연마했으니, “시방은 선생이 다 됐다.” 톱이라고 다 같은 톱이 아니다. 용도에 따라 톱날이나 톱의 모양이 각기 다르다. 나무를 자르는 톱이 기본이지만 배 만드는 톱이나 자개농·장식장 만드는 공예용 톱 등은 특수제작된다. 나무를 켜는 톱도 따로 있다. 통영에서 목공예를 하는 인간문화재들도 노인에게 톱을 부탁한다. 노인은 톱 만들고 톱날 갈아서 동생들, 자식들 공부시키고 결혼까지 시켰다. 톱이 노인의 인생을 완성했다. 톱을 잘 만들고 잘 가는 것은 기술보다 마음의 평정이다. 노인은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쇠를 다룬다. 자칫 잘못하면 쇠가 부러지거나 몸을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쇠도 마음속에서 다스려야 잘 다루어집니다. 손이 아니라 마음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50여년 쇠를 다루고 톱을 만들면서 얻은 노인의 깨달음이다.

강제윤 시인·<자발적 가난의 행복> 저자 bogiln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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