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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4.07 15:07 수정 : 2011.04.07 15:07

굴과 멍게의 섬 화도. 굴 채묘 작업 중인 주민들.

[매거진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초봄 거제시 화도 송포마을. 어로를 다녀온 사내는 이제 또 농토를 일군다. 오늘은 텃밭에 거름을 주고 도라지를 심었다. 밭에는 물메기와 망상어·인상어 등의 생선과 몰·파래 등 해초가 거름으로 뿌려져 있다. 옛날에는 섬에서 생선이나 해초가 거름으로 많이 쓰였다. 청산도에서는 고등어를, 임자도에서는 꽃게를, 제주에서는 자리돔을 거름으로 썼었다. 생선이 흔하던 시절 이야기다.

사내는 “땅에는 바다에서 올라온 것이 좋다”고 믿는다. 오래 농사를 지으며 몸으로 얻은 깨달음이다. 여러해 전부터 사내는 밭에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다. 한동안은 계분 등의 축비도 써봤지만 여름에 비가 오면 낙화와 낙과가 심했다. 그 뒤로는 바다에서 나는 것들을 비료로 쓴다. 그랬더니 낙화·낙과가 없어졌다. 해변에 떠밀려온 죽은 생선이나 해초는 물론, 미더덕·멍게·성게 썩은 것도 거름으로 쓴다. 이제 저 거름진 밭에서는 온갖 채소와 곡식들이 푸르게 자라날 것이다.

고개 하나를 넘으니 또 해변 마을이다. 비탈밭을 일구던 할머니 한 분 괭이를 들고 내려오신다. “뭐 심으시려구요?” “감자 숭글라고. 때가 돼서 쪼간 숭글라고.” 감자밭을 일구고 오신 할머니, 나그네가 섬에 찾아온 까닭이 궁금하시다. “귀찮아라. 이 잘난 섬에 뭐 볼 거 있다고 왔노. 암것도 좋은 게 없어. 이런 데 오면 먹을 것도 없고.” “서울보다 좋은데요.” “이런 데 사람들은 서울 못 가서 애가 터져 죽는 사람도 있는데.” 웃자고 하는 소리시지. 할머니는 막상 서울서 살라면 못살겠다 하신다. “그런 데 좋다고 오라 해도 요만 못하데요. 서울, 부산도 통영도 요만 못해.” 서울이나 도시가 좋아 보여도 사는 데는 여기보다 좋은 곳이 없다. 어찌 안 그러실까. “나 혼자 사는 게 젤 펜해. 아들도 귀찮고 딸도 귀찮고. 잘해주는 것도 귀찮고, 잘 묵는 것도 귀찮고. 잘해주면 좋아야 할 텐디 왜 그럴까요? 참 신기해요.” 참, 신기한 일이다. “오랜만에 간다고 잘해주는 것도 싫어. 라면 끓여 묵어도 내가 묵고 싶을 때 묵고. 드눕고 싶을 때 드눕고. 거참 신기하죠?” 할아버지는 10여년 전에 세상을 떴다. “영감은 죽을 때 돼서 죽었지. 죽을 때가 되면 가야지. 조금 앞에 가고 조금 뒤에 갈 뿐이지. 다 가게 돼 있는데.”


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마을 사람들은 다들 바다에 나갔다. 이 섬도 굴과 멍게 양식이 주업이다. “자식들이 같이 살자 해도, 섬 거기 뭐 있다고 가느냐 해도 여가 좋아요. 아파트 안에 갇혀서 아침에 나간 사람 저녁에 올 때까지 기다리자면 애가 터져 죽어.” 할머니 말씀처럼 사람이란 참 신기한 동물이 아닌가. 하지만 한번 자유의 맛을 본 사람은 안다. 어떠한 안락도 자유와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그건 늙어서도 그러하다.

시인·<자발적 가난의 행복> 저자 bogiln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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