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3.10 19:35
수정 : 2010.03.1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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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란스파게티.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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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신의 ‘꼬미꼬미’
거칠게 날 몰아붙이던 그녀, 이탈리아 레스토랑 ‘메모리’ 셰프 사키 상
“선배님, 서양음식을 배우려면 프랑스 요리와 이탈리아 요리, 어느 쪽을 더 노력해야 하나요?”
프랑스에서 연수를 하고 온 제국호텔의 셰프 드 파르티(chef de partie·한 부서의 조리장) 가와사키 선배는 프랑스 요리를 추천했다. “프랑스 요리를 알면 이탈리아 요리는 더 수월하지. 프랑스 요리는 기교가 많아서 말이야….” 라비튀드에서 도야마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메모리’(memory)로 이적한 뒤 곱씹을 수 있는 얘기였다. 말이야 쉽지, 이탈리아 파스타 하나 마는 것도 쉽지 않은데! 메모리의 주방 책임자는 ‘사키’ 상. 여자였다.
일본 여자라고 우습게 보다간 큰코다친다. 남자 세계에서 다져진 거친 성격, 흑백 논리의 전형적인 주방 ‘곤조’를 자랑하는 경력 7년차의 이탈리안 셰프다. 손님에겐 그토록 살랑거리면서 돌아서선 덴구(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코가 큰 전쟁의 화신)의 얼굴을 하는 사키 상. 가끔 던지는 질문은 “마카나이 뭐 먹을래!” 이건 질문이 아니다. 이미 식사는 정해졌으니 주는 대로 먹으라는 의미다. 바쁜 금요일 디너 타임. 사키 상의 아농스(주문을 주방에 전달하는 것)는 무슨 말인지 헛갈리기 시작했다.
“고라, 페페론치노, 카프레제, 볶은 가지의 토마토 블랑제, 오루 완!” 메뉴는 알겠는데 ‘오루 완’이라니?? 핫 라인에서 파스타를 요리하던 나는, “죄송하지만 ‘오루-완’이 뭡니까?”라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고라! 오루-완 전부 한 개라고, 몰라? 영어로 오루-완! 너 미국에서 살았다며?” 망연자실한 순간이다. 영어 ‘올 원’(All One)을 ‘오루-완’이라고 말하면 누가 아냐고? 게다가 영어에 그런 표현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사과하고 일에 집중했지만, 영어를 좀 한다는 내게 무시당한 느낌이 들었는지, 덴구같이 얼굴이 붉어진 사키 상. 여지없이 공격이 들어왔다.
“멘타이코 파스타 산닝 마에(명란 파스타 3인분) 김, 네가 만들어!” 사실, 명란 파스타는 한 번도 만들어 본 적 없던 나에겐 주방장의 거침없는 하이킥이었다. “하앗?” 순간 놀라서 당황했으나 동료 다바다 군이 의연하게 도와준다. “명란 파스타도 만들 줄 모르나? 학교에선 뭘 배운 거야?” 질 좋은 명태의 알과 버터, 건 다시마 가루, 약간의 소금과 생강의 향이 코를 자극한다. 김이 피어오르는 잘 삶아진 스파게티에 명란이 익지 않게 빠르게 섞어서, 말아서, 생강의 즙을 살짝 뿌려서, 그리고 고명으로 고소한 돌김을 얹어 내는 일본식 퓨전 파스타. 이건 절대적으로 알덴테(파스타의 꼬들거리는 질감)의 면과 입안에서 터지는 명란의 하모니가 승부처다. 하지만, 나는 재료 준비에 신경을 쓰느라 면의 삶은 상태를 체크하지 못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김! 파스타가 이게 뭐야! 안단테가 아니잖아!” 이탈리아 ‘알 덴테’가 일본의 ‘안단테’로 진화하는 순간이었다. 사키 상도 실언을 눈치챘는지 쭈뼛거리다 그냥 돌아섰다. 다음날 퇴근 시간 사키 상이 넌지시 물었다. “김, 너 영어 회화 할 수 있나? 나도 공부 좀 하려 하는데.” 물론이지요, 내겐 파스타를 가르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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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란 스파게티
◎ 재료 : 스파게티 300g, 명란젓 2알, 버터 3큰술, 건 다시마 가루, 다시마차(곤부차) 1작은술, 연어알 100g, 실파 4줄기, 구운 김 1/2장
◎ 만드는 법
1. 끓는 물 2ℓ에 올리브 오일과 소금을 넣고 건 스파게티를 삶는다. 봉지에 쓰여 있는 시간으로 조리한다. 2. 면이 익는 동안 잘 풀어준 명란젓과 버터, 다시마 가루를 잘 섞어 면이 익어 나오자마자 무쳐 준다. 3. 잘게 썬 실파, 구운 김, 연어알을 살짝 보기 좋게 얹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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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 올리브앤팬트리 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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