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4.07 21:41
수정 : 2010.04.07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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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의 ‘꼬미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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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신의 ‘꼬미꼬미’
‘매운맛 누가누가 잘 먹나’ 경쟁하다 피똥 싼 사연
레스토랑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다. 대륙 깊숙이 자리잡은 ‘주방국’과 도로와 거리를 싸고 앉은 ‘홀’국 흔히 ‘영업국’이라고도 하는 이 두 나라의 자존심 경쟁. 그리고 매출 향상 전투는 17세기 레스토랑 역사가 시작된 이래 계속돼 왔다.
홀에서 근무하는 이마이상은 ‘리스토란테 메모리’에서 가장 나이 많은 고참이다. 본업은 서퍼로 파도타기를 업으로 살지만 비수기에는 여기 레스토랑에서 일을 한다. 전세계를 누비며 서핑 대회에 참가했다고는 하나, 아무도 믿는 사람은 없었다.
비 내리던 어느 토요일 오후. 사키상이 앵앵거리기 시작했다. “오늘 뽀요 알 아라비아따 스페셜인데, 뻬뻬론치노 어디 두었나?” 뻬뻬론치노 - peperoncino - 즉 중국의 페퍼라는 이름. 왠지 실크로드 혹은 해상 무역을 통해 이탈리아로 전해졌을 것 같지만, 사실 중남미에서 그 유명한 콜럼버스 선장을 통해 15세기에 이탈리아로 전해졌다고 한다. 이 맵고 작은 고추가 드디어 일을 벌였다! “사키상, 여기요.” 다바타에게서 뻬뻬론치노를 건네받은 사키상은 올리브기름에 마늘과 뻬뻬론치노를 뭉근히 구워내고 그 감미롭고 자극적인 기름에 상큼한 토마토소스와 닭을 뼈째 넣고 악마같이 매콤한 ‘아라비아따’를 만들어냈다. “악! 넘 매운 거 아냐?” “무슨 소리야! 이렇게 화끈해야지 제맛이라고!” 서빙을 하는 야마네상과 사키상이 서로 주고받는다. “어이, 김, 너 매운 거 잘 먹지? 김치도 고춧가루로 만들잖아, 네가 한번 먹어봐.” 꼭 이럴 때만 민족의 자긍심을 불태우게 하는 사키상. “음~, 괜찮은데요. 저한테는 뭐 그리 자극적이지 않지만.” 한국인의 자존심은 매운 고추처럼 불타고 있었다. “뭐야 뭐, 매운 거 먹기 시합인가?” 갑자기 끼어든 이마이상은 건들거리며 빈정거린다.
“이야~ 김군, 매운 거 좋아하는구나. 나도 조금만 줘요. 뭐야~ 이 ‘아라비아따’는 달콤하잖아, 맵지 않아!” “흠, 이게 뻬뻬론치노인가?” 순간, 이마이상의 입안에 두세 개의 핏빛 고추가 으적거리며 형태를 감추고 있었다. “하하, 이마이상 제법 즐기시는군요, 저만큼은 아니지만 후훗.” 나의 입속에 들어간 댓 개의 뻬뻬론치노도 피를 토하며 뭉개어지고 있을 무렵, 이마이상은 타바스코를 꺼내 들었다! “오우, 목말라 숨 좀 돌리자고.”
싱그럽게 웃으며 타바스코를 빨아 먹는다. “자, 한잔해.” 그가 건네준 타바스코 원액. 설마 이건 아니겠지. “김군, 여기서 밀리지 마! 주방 곤조가 있지.” 사키상은 벼랑 끝의 나를 마구 밀고 있었다. 난 그냥 믿었다, 한국인의 혈관에는 고춧물이 흐르고 있다고. 그래서 아무 일 없을 거라고.
그렇게 받아 마신 고춧물은 나의 혈관을 통해서 며칠간의 구토와 설사로 이어졌다.
이마이상은 어땠을까? 전혀 아무 일 없이 근무했다. 다만 그는 리스토란테 메모리 ‘영업국’의 새로운 왕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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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요 알 아라비아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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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요 알 아라비아따. 김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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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료 : 닭 반 마리(볶음용으로 500g), 마늘 두 쪽(잘게 다져서 준비), 밀가루, 화이트와인 1/2컵, 올리브유 3큰술, 마늘 세 쪽(살짝 으깨서 준비), 양파 1/2개 (깍둑썰기), 토마토 홀(로마노 토마토 캔) 세 컵, 뻬뻬론치노 5개, 소금, 후추, 타임 1작은술, 로즈메리 1작은술
◎ 만드는 법
1. 닭고기에 소금, 후추, 와인, 다진 마늘을 양념하여 냉장 2시간 숙성. 2. 중불의 프라이팬에 분량 외의 올리브유 2큰술을 두른 뒤, 밀가루에 가볍게 버무린 닭고기를 넣고 갈색으로 약 3분간 익혀준다. 3. 다른 냄비에 올리브유를 넣고 뻬뻬론치노, 마늘, 양파, 타임 그리고 로즈메리를 넣고 2분간 볶아주다가 토마토를 넣어서 2분간 잘 저어준다. 4. 잘 구워진 닭을 3에 넣고 뚜껑을 씌운 뒤 약 20분간 약불에서 졸여준다. 5. 때때로 바닥이 눌어붙지 않도록 확인하며 조리한다. 기호에 따라 올리브, 월계수잎 등을 더하여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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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 올리브 앤 팬트리 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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