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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4.30 08:37 수정 : 2010.04.30 08:37

리소토 알 네로 디 세피아.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김신의 ‘꼬미꼬미’
정신없이 만들다 프라이팬 부속품이 빠진 줄도 모르고…





‘요리사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내가 요리를 처음 시작했던 일본 요리학교의 교무주임 가와이 선생님의 말씀이다. “수많은 직업 중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발급하는 자격증은 의사, 요리사밖에는 없다. 너희들은 의사와 더불어 흔적도 없이 인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직업이다. 항상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에 임해야 한다.”

리스토란테 메모리의 어느 토요일, 마침 오전 시프트에 빈자리가 있어서 런치 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날따라 런치 손님이 북적거렸다. 평소에 디너 시프트만 근무하던 터라 바쁜 런치가 손에 익을 리가 없다. ‘이런, 프라이팬이 꽤 낡았군….’ 그 와중에 손에서 건들거리는 팬 하나가 신경이 쓰였다. 바쁜 런치 시간이라, 따로 빼놓지도 못하고, 오징어먹물이 들어간 ‘네로 디 세피아’를 만들던 중이었다. ‘투두둑!’ 계속적인 프라이팬의 흔들림에 손잡이와 팬을 이어주는 ‘리벳’ 부분이 헐거워 빠져 버렸다! ‘휙’ 하고 돌아가는 프라이팬. ‘아차!’ 하지만 다행히 팬은 그대로 화구 위에 착지하여 맛있는 리소토를 만들 수가 있었다. 오후 2시 주방에서 마지막 주문을 마치고 돌아서려는 순간 “김! 이거 뭐야?”-고춧가루같이 칼칼한 사키상의 부르심-그것은 아까 만든 ‘네로 디 세피아’에서 나온 검은색 리벳!!! “아, 그것은….” “너 이따위로 일할래! 칙쇼, 앞치마 벗고 뒤로 나와!” 난 사키상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생쥐다.

아까 프라이팬에서 빠져 버린 리벳은 다른 곳으로 튕겨져 나간 것이 아니라, 그대로 검은색 리소토 속에 파묻혔고, 마침 먹물 때문에 형체를 못 알아본 것이다. 밖에서 담배를 꼬나문 채 앞치마를 풀고 있는 사키 주방장. “네가 그딴 식으로 일하니까 발전이 없지, 요리사는 아무나 되는 줄 알아? 눈은 뒀다 뭐해? 그것도 음식이냐? 프라이팬 좀 잡게 해줬다고 주방장 행세하려고 드냐? 네 파스타 드신 분 이빨 부러졌어! 네가 치료비 낼 거야!!!” 사키상은 제대로 돌아 버렸다. 정말, 입에서 ‘개거품’ 물고 덤빈다는 게 어떤 건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동네에 연세 드신 할머니 한 분이 손녀와 같이 파스타 드시러 오셨다가 봉변을 당하신 거다. 바로 나 때문에. 박봉이었지만 우선 할머니께 치료비를 드렸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할머니께서 ‘리벳’을 삼키셨다면 더 큰 문제로 번졌을 텐데 이만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2006년, 난 똑같은 경험을 서울에서도 겪었다. 청담동의 레스토랑에서 서비스 쿠키를 먹던 중 딱딱한 물체가 이빨에 씹혔다. 다름 아닌 타르트를 구울 때에 쓰이는 바둑알 모양의 쇳덩이. 아마도 초년병의 실수였던 것 같았다. 무척 화가 났지만 어쩌랴, 후배가 임원으로 있는 곳인걸, 그냥 커피 두 잔 서비스받고 눈감아 주었다. 한편으론 일본 할머니의 어처구니없던 표정이 지나가며 나 자신의 부족함에 커피 맛이 조금 쓰게 느껴졌다.

김신 올리브 앤 팬트리 주방장

■ 리소토 알 네로 디 세피아


재료 : 쌀 500g, 한치 1마리(오징어 대체 가능), 이탈리안 파슬리 소량, 바지락, 홍합 육수 1000㏄(다시마, 마늘, 셀러리, 양파 등등 갖은 채소와 약간의 화이트 와인을 같이 끓여 주세요), 올리브유 2큰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3큰술, 마늘 한 쪽(얇게 편으로 썰기), 양파 2분의 1개(작은 주사위 모양으로), 방울토마토 10알, 소금, 후추, 월계수잎 1장, 오징어먹물

만드는 법 : 1. 쌀은 씻지 말고 냄비에 올리브유 2큰술과 마늘, 양파를 넣고 같이 볶아 주세요. 2. 쌀이 약간 투명하게 보이는 1~2분 뒤 월계수잎과 준비된 육수를 반만 부어 주시고 두어번 휘휘 저어 준 다음 가볍게 뚜껑을 씌워 약불에서 10분 정도 끓입니다. 3. 뚜껑을 열고 방울토마토 5알을 꼭지를 제거하고 반으로 자른 뒤 쌀 속에 넣습니다. 뒤이어 잘게 다진 한치의 다리를 넣어 주세요. 4. 오징어먹물을 한 큰술 쌀에 넣고, 조개 육수를 한 컵, 그리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한 큰술 더하여 냄비의 바닥까지 잘 저어 주세요. 아마도 지금쯤이면 찐득거리는, 흡사 죽처럼 보일 것입니다. 5. 잘 씻은 한치의 몸통을 쌀 위에 얹고 뚜껑을 덮은 다음 불에서 내려 뜸을 들이면서 같이 익혀 줍니다. 6. 약 11분 뒤 뚜껑을 열면 잘 익은 한치와 먹물의 리소토가 준비됩니다. 7. 잘게 다진 방울토마토와, 이탈리안 파슬리, 그리고 남은 올리브유를 뿌리고 약간의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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