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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만 만지던 손에 송로버섯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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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신의 ‘꼬미꼬미’
잡담 않고 묵묵히 일을 하자 혼자만 승진하는 행운이!겨울이 되면 리옹은 잠시 조용해진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특히 관광객) 11월에 출시되는 보졸레 누보를 맛보려 부르고뉴 지방에 몰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리옹으로 밥을 먹으러 온다.
분주해지는 리옹. ‘보퀴즈’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11월 중순이면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이는 식자재. 관광객들이 보졸레 누보에 열광할 때면 리옹의 주방들은 앞으로 몰려들 고객 준비에 여기저기에서 최상의 식자재를 구입하는 데 눈코 뜰 새가 없다. ‘김신’에게 맡겨진 건 쌓여 있는 양파와 감자, 당근 등을 정리하고 다듬어놓는 기계적인 밑작업들. 말이야 쉽게 들릴지 모르지만 창고 앞에 쌓아놓은 구근 농작물을 정리하려면 수십㎏의 박스들을 혼자서 반나절 꼬박 걸려 정리하고 다듬는 데만도 예닐곱명이서 5시간 이상 걸리는 만만치 않은 공사다.
혼자서 수많은 박스를 정리하고 아노, 프랑소아, 쯔네, 도모 그리고 나, 이렇게 꼬미들만으로 시작된 양파 까기 - 얼음을 넣은 찬물에 양파를 수영시키고, 거기서 완벽한 품질의 양파만을 선별해 껍질을 제거한다. 두시간 정도 작업하면 두 손은 냉기와 양파의 매운 성분에 부르트기 시작한다. 선별한 양파는 마른 수건으로 잘 닦아서 건조한 저온 저장고에 보관. 감자, 당근 또한 비슷한 방법으로 약 한달 동안의 소비량을 정성스레 비축한다.
이렇게 약 나흘간 작업을 하다 보면, 손이며 다리, 허리, 어깨가 남아나지 않는다. 손은 칼, 또는 식자재에 섞여 있던 불순물에 자연스럽게 상처를 입고, 물에 닿아서 낫지를 않는다.
그러던 마지막 날, 가드만제(주로 채소, 치즈, 콜드컷 등의 차가운 음식 담당)인 장프랑수아가 호출을 한다. “치노, (아무도 내 이름 따위는 상관 안 한다, 그저 중국인처럼 ‘치노’라고만 부른다) 이것 좀 가져가서 정리해라.” 맙소사, 그것은 송로버섯이었다. 주방에서 오직 최고 책임자만이 만질 수 있고, 금고에 꼭 싸서 꽁꽁 묶어놓는 송로버섯. ‘이걸 왜 나에게?’ 나는 영문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약 300만원어치의 송로버섯을 이탈리아산 보리오 쌀과 함께 꽁꽁 싸서 정리했다.
나흘간의 고생 뒤 알렉스가 위로를 건넨다. “신, 나도 처음엔 너처럼 반창고투성이였어. 그런데 상처가 아물고 단단해지면서 내 마음도 단단해지더라. 난 지금도 실수를 해, 하지만 매일 다가서고 있지 내가 서야 할 자리로. 꿈을 가지고 있다면 포기하지 마, 우린 매일 전투를 하는 거야, 선의의 경쟁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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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의 ‘꼬미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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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문 밖으로 나와보니, 멀리서 빨간 학교 버스 위로 초겨울의 하늘이 파랗게 떠 있었다. 아마도 승진 건을 미리 알고 있던 알렉스는 힘들어하는 나에게 격려의 말을 건넨 것이 아니었을까?
김신 올리브 앤 팬트리 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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