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슬기와 민의 리스트 마니아
1 음악에서 ‘페이드아웃’이란 소리를 조금씩 줄이는 기법을 뜻한다. 여러 대중음악곡이 페이드아웃으로 끝난다. 2 지금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페이드아웃이지만 그 역사는 길지 않다. 1916년 영국 작곡가 구스타브 홀스트가 발표한 <행성 모음곡>의 종결부는 여성 합창으로 구성되는데, 공연에서 홀스트는 합창단이 따로 떨어진 방에서 노래를 부르게 하고는 곡이 끝날 무렵 방문을 조금씩 닫아 페이드아웃 효과를 창출했다. 여러 사람이 그 효과에 충격을 받았다. 3 녹음기술 초기에는 음원을 녹음기에서 조금씩 멀어지게 함으로써 페이드아웃 효과를 만들었다. 예컨대 1894년 미국에서 녹음된 <76년 정신>은 페이드아웃을 통해 멀어지는 군악대를 표현했다. 4 확실히 페이드아웃은 멀어짐과 통한다. 서구 대중음악의 기원이 노예, 이주민, 노동자의 여행과 관계가 있음을 생각하면, 페이드아웃은 단순한 잔재주가 아니라 음악의 뿌리와 맞닿은 기법이다. 빠른 페이드아웃은 새로 개통된 기관차에 사랑하는 이를 태워 보내고, 느린 페이드아웃은 그들을 보내지 않으려 한다.5 비틀스의 1968년 작 <헤이 주드>는 느린 페이드아웃으로 유명하다. ‘나-나-나 나나-나-나, 나나-나-나, 헤이 주드!’가 반복되는 종결부는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2분이 넘게 걸린다. 6 1930년대 초만 해도 음반 한 면에는 2~5분 분량밖에 담을 수 없었기 때문에, 긴 곡은 앞뒷면에 나누어 녹음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단절감을 줄이려고 페이드아웃이 쓰이기도 했다. 그 시절에 <헤이 주드>가 녹음됐더라면 한 면 전체가 페이드아웃으로만 이루어졌을 것이다. 7 페이드아웃의 반대는 ‘페이드인’이다. 소리가 점점 커지게 하는 기법이다. 어떤 노래는 페이드아웃으로 끝나는 듯하다가 다시 페이드인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1969년 작 <의심하는 마음>이 그렇다. 의심은 연인을 떠나보내지만 믿음은 그들을 돌아오게 한다. 8 스미스의 1986년 작 <남들보다 큰 여자들이 있지> 도입부는 페이드인-페이드아웃-페이드인을 반복한다. 문을 열었다가 놀라서 닫고 잠시 주저하다 마침내 다시 열고 들어간다. 3분쯤 지나고 “네가 꿈꿀 때 베는 베개를 내게 보내줘”라는 구절이 나오면 결국 마지막 페이드아웃이 시작된다. 9 라디오헤드는 1996년 <길거리 정신(페이드아웃)>이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보컬리스트 톰 요크는 이 노래가 너무 우울해서 연주하기가 두려울 정도라고 밝혔다. 노래는 시종 죽음을 암시하다가 “그리고 다시 페이드아웃, 페이드아웃”이라는 가사를 반복한다. 그리고 페이드아웃 없이 갑작스레 끝난다. 10 페이드아웃으로 끝나는 노래를 공연에서 재현하기는 어렵다. 방송에 출연해 립싱크로 공연할 때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열심히 춤을 추다가 녹음된 음원의 페이드아웃에 맞춰 동작을 수습하고 마침내 음악이 멈추자 멋쩍은 표정으로 “감사합니다”를 던지는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답지만, 보통은 그 모습을 충분히 즐기기 전에 조명이나 화면이 페이드아웃한다. 최슬기·최성민/그래픽 디자이너 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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