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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1.20 20:32 수정 : 2010.01.25 14:31

[매거진 esc] 남기자 M의 B급 마초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날 밤은 시체가 천천히 썩는 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마초들에게 지난해 초식남 열풍은 ‘이 뭥미?’였다. 얼굴부터 두뇌까지 ‘설계 잘된’ 마흔 살 건축가가 연애와 결혼에 관심이 없다니.(그럼… 원나이트만 한다는 말인가) 초식동물처럼 온화하고 혼자 있는 것을 즐기며 이종격투기나 축구를 경멸하고 패션과 뷰티에 관심이 많고 친구가 죄다 여자란다.(그럼 패션, 격투기, 여자에 동시에 환장하는 내 친구는 무슨 종이지?)

 밸런타인데이는 여자친구에게 대놓고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자”고 말하기 좀 민망한 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마초들에게 짐승남 돌풍은 더욱 가관이었다. 어이~ 이쁜이들! 여기 좀 봐봐! 우리 대한민국 마초 짐승남들은 항상 그 자리에 서 있었다구! 접촉 사고 나면 일단 소리 지르기 위해서 목 가다듬고, 목욕탕에 가면 꼭 서서 오줌을 누고, 머리를 감을 때 세렝게티의 누처럼 물을 튀기며 “어~ 시원하다”고 외쳐야만 하는 짐승남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단 말이다! 근데 왜 이제야 짐승남 열풍?(스스럼없이 ‘이쁜이’라는 단어를 쓰는 바로 마초들 말이다)  사설이 길었다. 시대에 역행하며 마초 칼럼을 시작한 건 딴게 아니다. “내게 여름은 시체가 더 빨리 썩는 계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던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에 등장하는 형사님이나 수백명 기자 앞에서 탁자 위에 올라가 바지춤을 내릴 듯 부여잡던 나훈아 형님은 진정 존경할 만한 에이급 마초다. 몸도, 정신도 강하고, 남에게 강하고, 스스로에게도 강한 진짜 마초.(그러다 부러지는 건 논외)

 단언컨대 이런 진짜 마초는 수마트라 코뿔소 이상의 희귀 동물이다. 비급 마초는 안다. 대부분의 한국 마초들은 나 같은 비급 마초라는 걸. 그러므로 이 칼럼은 절반은 비급 마초의 통렬한 반성이고, 절반은 유행 따라 초식남에 환장했다 짐승남에 열광하는 철없는 여성들이 마초의 현실을 이해하도록 돕고자 함이다.

 나는 비급 마초를 한국 사회에서 배워 먹고 커온 대로 겉으로는 마초와 ‘가오’를 지향하지만 실제로는 찌질하고 소심한 수컷이라고 정의한다. 딴에는 먹물이라고 대학 시절 로즈메리 통이니 글로리아 스타이넘이니를 읽었지만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질질 짜는’ 걸 보면 “남자가 울기는…”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고, 그런 나를 마초라고 부르는 비난을 은근히 즐기지만, 사실은 어떻게 하면 가오 다치지 않게 싸움을 피할까를 일분일초 고민하는 내가 이 범주에 들어갈 것 같다. 내 인생은 비급에서 벗어나려는 투쟁이었건만, 돌이켜보면 항상 현실은 시궁창이고 난 찌질한 비급 마초였다. 다음번에 비급 마초의 영원한 화두인 눈싸움의 비밀부터 시작한다. 아일 비 백.(아, 글쎄 비급 마초도 말은 항상 멋지게 하고 싶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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