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2.03 19:18
수정 : 2010.02.03 19:18
[매거진 esc] 남기자 M의 B급 마초
나는 예나 지금이나 남자 고등학생을 침팬지라 생각한다. 그 시절의 나를 돌아봐도 그렇고 지금 먼 친척뻘 조카들을 봐도 그렇다. 침팬지에게 자위를 가르쳤더니 하루에 수십차례 반복하다 병들었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남고생의 행태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 침팬지와 진짜 침팬지의 차이는 ‘난 알아요’ 춤을 출 수 있느냐는 정도?
당시 침팬지들에게 눈싸움은 중요했다. 1950년대에 제임스 딘이 보여준 ‘치킨 게임’의 한국 버전이다. 가령 인도에서 나를 향해 걸어오는 다른 학교 침팬지와 눈이 마주쳤다고 치자. 5m. 아직 목을 돌리지 않고 자연스레 쳐다본다. 2m. 거리가 줄면 목을 틀어야 한다. 30㎝. ‘나는 너를 보고 있다’는 신호가 분명해진다. 이때 먼저 시선을 돌리면 진다. 둘 다 ‘가오’를 살리며 쳐다보면 싸움이 시작된다. 당시 우리 학교엔 이때 시비 거는 멘트도 정해져 있었다. “너 나 아나?”(톤은 “너-나↗아-나~↗” 정도?)
설마 수컷들이 이렇게 무식하냐고 여성들은 되묻는다. 짐승남 좋아하는 여성들이여, 옥택연에게 물어보라. 웃기려고 과장한 게 아니다. 남고생만 그런 게 아니다. 매해 겨울 꾀죄죄한 수습기자가 경찰서에서 기삿거리랍시고 보고하는 사건의 4분의 1은 눈싸움 사건이다.(강북 지역 어느 경찰서 형사과에 들어가다 “택배가 어딜 함부로 들어오느냐”고 제지당했던 당시의 나도 종종 보고했다 지청구 먹곤 했다) 못 믿겠으면 당장 포털에 ‘쳐다봤다, 경찰서’라고 뉴스 검색을 해보라. 지난해 5월 관악구에선 밤 11시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며 시작된 시비가 살인으로 번졌다. 2006년엔 청주에서 어느 겨울밤 우연히 노상방뇨를 나란히 하던 취객이 서로 “쳐다봤다”고 싸우다 입건됐다.(짐승남 좋아하는 여성들아, 이런 필부필부 짐승남들도 좀 사랑해주세요)
두달 전 2호선 지하철을 타고 가던 길이었다. 신림역이었을까. 사람이 빼곡한 열차에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가는 녀석이 있었다. 책을 들고 있던 내 오른손도 툭, 흔들렸다. 놈을 쳐다봤다. 20대 초반에 170㎝쯤 됐고 말랐다. 승모근(목 뒤 어깨와 이어진 근육. 승모근이 크면 맷집이 좋다)도 없었다. 한마디로 별것도 없어 보이는데 ‘너 잘 걸렸다’는 듯 나를 봤다. 마약 먹은 듯 풀린 눈이다. 나는 0.35초간 노려보다 상대방이 알아채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놈의 머리 뒤 안내 전광판을 살피는 척 두리번거렸다.(침팬지도 나이를 먹으면 똥은 더러워서 피한다는 걸 학습한다)
비급 마초는 웬만하면 진짜 싸우지 않는다. 가오는 중요하지만 진짜 주먹을 섞었다간 볼썽사납게 팔을 허우적대거나 심지어 여자처럼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싸움이 중요하다. “눈 깔아”란 말이 계속 쓰이는 것도 그 때문일 게다. 다음번에는 실제로 싸움에는 쓰이지 않는, 비급 마초들의 영원한 로망 근육에 대해 설명한다. 피스(Peace)~.(역시 요새 마초계의 대세는 힙합식 인사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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