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3.24 19:25
수정 : 2010.03.24 19:25
[매거진 esc] 남기자 M의 B급 마초
나이트클럽에서 정치적 올바름은 치명적이다. 적어도 내가 관찰하고 들은 ‘녀석’의 주장에 비추면 그렇다. 어떤 정치적 올바름의 강박도 던져버리고 송곳처럼 욕망에 집중하는 남자만이 ‘홈런’을 칠 수 있다.(홈런은 ‘원 나이트 스탠드’를 가리키는 은어) 동갑내기 친구인 녀석은 오랜 나이트클럽 수도로 단련돼 있었다. 녀석의 지론은 여자가 어릴 때도 반말하고 나이가 많아도 반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자에게 반말을 해야 한다는 녀석의 철학(?)은 다음과 같은 논리에 근거하고 있었다. 반말은 무례해 보일 수 있지만, 단 한 번에 심리적 거리감을 줄인다. (나이트클럽에 온) 여자들은 남자가 거칠게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심리적 거리 5㎞를 뛰어넘어주길 내심 기다린다는 것이다.(무례함은 곧 섹시한 터프함이다!) 반면 존댓말은 예의 바르다. 정치적으로도 올바르다.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억압받는 한국에서 특히 처음 본 여성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무례함을 넘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행위다. 그러나 그 올바름은 깊은 강을 사이에 두고 남자가 강 건너 여자에게 흔드는 깃발이다. 깃발은 강을 건너지 않는다.
나는 녀석의 수제자였다. 녀석의 ‘무례해지기’ 강의는 나이트에서도 이어졌다. 4~5년 전쯤 녀석과 당시 꽤 타율이 높다(=원 나이트 스탠드 확률이 높다)는 나이트로 향했다. 룸에 들어갔다. 이날 밤 우리를 책임진 웨이터에게 1만원권 지폐를 찔러주고 잠시 기다렸다. 10분 뒤 문이 조용히 열렸다. 20대 후반 여자 2명이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손목을 잡혀 방에 들어왔다. “몇 명이 오셨어요” “언제 들어오셨어요” “어디 앉아 계세요” 등 언제 어느 나이트에서나 하는 ‘질문 3종 세트’를 던지자 나는 할 말이 뚝 떨어졌다. 게다가 여전히 존댓말이었다.
그때였다. 건너편에 앉은 녀석이 한두 마디 대화를 나누다 다짜고짜 반말로 “오빠가 말 놓으면 되겠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녀석의 옆에 앉은 여자는 싫지 않다는 듯 피식 웃으면서도 “왜 처음 보는데 반말이냐”고 말하며 담배를 한 개비 물었다. 녀석은 웃으면서 말했다. “얼굴 보니까 나보다 동생인 거 같아서. 그럼 누나야?” ‘정말 저열하기 짝이 없는 농담’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여자애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여자애도 나이트에 한두 번 온 것 같지는 않았다. 녀석과의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반말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녀석은 여자의 휴대전화를 갑자기 집더니 “네가 모르는 기능을 찾아주겠다”며 사진을 마구 보기 시작했다.(녀석은 물론, 휴대전화를 잘 모른다) ‘무례해지기’ 전술의 일환이었다. 나는 테이블 건너편에서 애꿎은 양주잔만 만지작거리며 옆자리 여자에게 말했다. “춤은 많이 추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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