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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4.07 22:28 수정 : 2010.04.07 22:28

[매거진 esc] 남기자 M의 B급 마초

발걸음이 빨라진다. 괄약근에 힘을 준 상태에서 빠른 걸음으로 걷기란 쉽지 않다. 뛰어들어가자마자 눈을 감는다. 안도. 해방. 눈을 뜨자 ‘화장실 문화 시민 연대’라는 이름이 보인다. 그 아래 캠페인 문구가 보인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소변 눌 때 ‘한걸음 앞으로 오라’는 요청을 에둘러 표현했다. 남자라면 눈물을 흘리면 안 되니까 ‘다른 물’도 흘리지 말라는 거다.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전근대적인 심리적 억압을 긍정적인 것으로 전제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사형집행인도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강한 남자는 결국, 자신을 파괴한다. <따귀 맞은 영혼>의 저자 베르벨 바르데츠키도 그렇게 주장했다. ‘남자는 울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억압한 남자는 강해 보이지만, 나이 들면 우울증과 갱년기에 시달린다. 심리적 억압이 자존감 형성을 막아 ‘나’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를 찾지 못하고 나이 든 남자는, 바람을 피우거나 우울증에 시달린다. 억압하는 것을 억압하라!

말하자면, 여기까지가 나의 공식 입장이다. 군 제대 뒤 복학해 파릇한 여자 후배들 앞에서 읽지도 않은 로즈메리 통(여성학자)을 들먹이며 저렇게 외쳤고, 명색이 기자라 취재원 앞에서도 늘 여기자에 대한 존중을 강조했다. 물론, 일단 술이 한잔 들어간 상태에선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의 초식남 지진희도 남자냐”고 투덜거리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지만 말이다. 머리로는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명제가 남성을 파괴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술 취해 집으로 가는 언덕길에서 ‘강해야 한다, 울면 안 된다’고 자신에게 말하는 자신을 자주 발견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주어가 ‘남자’가 아니라 ‘나’라는 것도, 변명은 되지 않을 것이다)

남자는 울면 안 된다고 어디서든 용감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건 에이(A)급 마초다. 말년에야 어떻든, 젊어서는 강해 보인다. 여성이 받는 부당한 차별에 대해 술자리에서 분노의 연설을 마치고 나서, 집으로 가는 길에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 목록에 드렁큰 타이거의 ‘남자기 때문에’ 같은 노래가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역시 나는 로즈메리 통이나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100% 이해한 것 같지는 않다.(이쯤 되면 길티 플레저?)

그게 언제부터냐고 묻지 마시라. 상처의 이유를 드러내는 것부터 신파다.(상처 받은 일을 ‘상처’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부터 신파다. 삼십대 남자가 상처라니 남우세스럽지 않나) 몇 가지 사건을 겪고 엠기자는 ‘내가 강해져야 한다’고 주문 걸기 시작했다. 마초에게 눈물은 금기다. ‘그 물’을 흘리지 않으려면 한 걸음 더 앞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면 심리적으로 한 걸음 더 뒤로. 아무 문제 없이 이렇게 살아왔다. 대체 마지막으로 엉엉 울어 본 게 언제였는지 가끔 궁금한 것 빼고는 말이다. 다른 마초들은 어떨까? 나는 휴대전화를 꺼냈다.(아일 비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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