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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4.21 17:25 수정 : 2010.04.21 17:25

[매거진 esc] 남기자 M의 B급 마초

마지막으로 엉엉 울어본 게 언제지? 이 물음에 바로 답하지 못하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문제 있다고 심리학을 공부하는 누이는 말했다. 과음한 다음날엔 시원하게 폭풍설사를 해야 정상이다. 선거가 없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압둘라 국왕의 스물다섯 번째 부인도 소리를 감추려 샤워기를 크게 틀어놓을지언정, 폭풍설사의 은밀한 즐거움을 만끽하지 않을 리 없다. 엉엉 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설사를 틀어막는 사람이라는 게 누이의 지론이다. 결론은? 감정의 변비. 변비에 걸려본 사람은 안다. 화장실 갈 때마다 감내하는 찢어지는 고통을.

동료 중 대표 마초 두 명에게 “마지막으로 엉엉 울어본 게 언제냐”고 물었다. 잠시 부연 설명하자면, 이들이 마초로 알려진 이유는 뚜렷하지 않다. “~하니”라는 어미보다 “~하냐”라는 어미를 사랑한다거나, 가끔 술에 취해 “여자처럼 징징거리지 말라”는 표현을 구사하는 것이 심심찮게 적발되었단 이유다. 무엇보다 마초라 불려도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조금 뒤 답신 왔다. 띠링. “노통 서거 때. 그가 불쌍해서. 분하고 원통해서.” 어떤 이모티콘도 없이, 한 마초 선배는 이렇게 보냈다. 다시 조금 뒤. 띠링. “ㅋㅋㅋ 엉엉 운 거 기억 안 나고 오늘 새벽 영화 <똥파리> 보면서 좀 흐느꼈다.” 영화 <똥파리>가 만들어지지 않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잘 기억 안 나”라고 답했을 게 분명한 두 마초를 울게 한 건 뭘까. 강한(척 하는) 남자도 보호받고 싶다. 그러나 강한(척 하는) 남자는 그런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강한(척 하는) 남자의 임무는 보호하는 것이지 보호받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한(척 하는) 남자는 태권브이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순간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너질 대상을 잘 찾는 게 중요하다. 그 대상을 못 찾은 남자는 감정의 변비에 걸린다. 변비 증상은 양익준 감독이 <똥파리>에서 잘 그렸다. 극중에서 양익준은 마지막에 비로소 감정의 변비에서 해방된다. 그리고 그 순간 죽었다. 엔딩 크레디트를 보면서 나는 “감정의 변비를 감내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공포에 시달렸다. 극장 옆자리에 사람들이 앉아 있는데도 민망하게 눈물을 훔친 이유의 80%는 그 공포였던 것 같다. 2002년에 노무현을 찍지도 않은 주제에 지난해 5월 시청 광장에서 아이처럼 울었던 건 그 공포와 무관하지 않다.

그가 대통령이었을 때 참 많이도 씹었다. 감정의 변비 같은 걸, 그에게는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감정은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변비 환자들을 앞에 두고 “변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대통령을 가진 지금, 그때 내가 운 이유가 조금 더 분명해진다. 나는 요새 다시 ‘감정의 변비를 감내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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