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5.06 14:10
수정 : 2010.05.06 14:10
[매거진 esc] 남기자 M의 B급 마초
비웃을지 모르지만 이제 털어놓을 때가 됐다. 내 안의 남자를 자극하는 ‘내 인생의 문장’이 있다. 순위를 매겨봤다.
3위. 풍림화산(風林火山). ‘바람처럼 빠르게, 숲처럼 고요하게, 불길처럼 맹렬하게, 산처럼 묵직하게’라는 뜻이다. <손자>(孫子)의 ‘군쟁’편에 나오는 말이다. 실제로 이 전술을 전투에 응용한 사람이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다케다 신겐이다. 그는 ‘풍’ ‘림’ ‘화’ ‘산’을 한 글자씩 적은 군기를 만들었고, 이후 ‘풍림화산’은 신겐의 군대를 상징하는 말이 됐다. 대학 친구는 오랫동안 휴대전화 인사말로 이 말을 썼다. 물론 그는 신겐과 달리, 바람처럼 빠르게, 숲처럼 고요하게, 불길처럼 맹렬하게, 산처럼 묵직하게, 술을 마셨다.
2위.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手丈夫兒). ‘벼랑에 매달린 손을 놓아야 대장부라 하리.’ 정동영 민주당 의원이 인용해 한때 회자됐다. 백범 김구 선생도 좋아했던 문구다. <백범일지>에 나온다. 원래는 불교의 선시에서 기원한다.
두둥~대망의 1위! 남자는 때로 지는 싸움도 해야 한다. 명망가나 유명인이 한 말은 아니다. 앞에서는 웃지만 결코 본심은 털끝만큼도 밝히지 않는 ‘악질’ 취재원과 폭탄주를 주고받다 한 회사 선배가 폭탄주를 한번에 다 마시고 잔을 내려놓으며 내뱉은 말이다. <손자>는 정확히 이와 정반대로 말한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고다. 그런데 질 줄 알면서 하는 싸움이라니?
실은 이 문장들은 주어를 ‘남자’에서 ‘사람’으로 바꿔도 썩 괜찮게 성립한다. 다만, 고민은 다른 데 있다. ‘풍림화산’이 현실의 내게도 벌어지기는 했다. 그러나 항상 모양새가 이상했다. 실수를 저지른 뒤 그 상황으로부터 ‘바람처럼 빠르게’ 도망가거나, 인사권자 앞에서는 부조리를 보아도 ‘숲처럼 고요’했다. 물론 ‘불길처럼 맹렬하게’ 싸운 적이 없지는 않다. 가령 “골목 하나를 더 돌아갔다”며 택시기사와 싸울 때처럼. 시비가 벌어질 것 같은 공간에 가면 상대방의 너클파트(주먹의 2관절과 3관절 사이)를 가장 먼저 보고 흉터나 굳은살이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 상대방이 격투기를 훈련한 흔적이 있는지 본다. 굳은살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되도록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격투기를 하면 너클파트에 굳은살이 생긴다.)
가령 가수 나훈아 같은 에이급 마초라면, 이 칼럼에 대해 “재미없다”는 반응이 지금처럼 쇄도하더라도 꿋꿋이 펜을 잡을 게다. 허나 어쩌랴, 겉으론 ‘풍림화산’ 운운하지만 비급 마초는 허약한 수컷이다. 그러니 이번 칼럼을 마지막으로 정글 같은 글쓰기 시장에서 남기자 엠이 도망친다 해도 너무 비웃지 마시길. 혹시 아나, 썼던 칼럼을 반성하며 다시 읽은 뒤 에이급 마초로 돌아올지. (아일 비 백.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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